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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28주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0월 12일 (다해)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2열왕 5,14-17; 2티모 2,8-13; 루카 17,11-19)


제1독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5,14-17
그 무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14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17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2,8-13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다해 연중 28주일 


감사로 여는 구원의 문


오늘의 말씀은 구원의 은총은 '감사'의 응답으로 완성됨을 가르쳐줍니다.
제1독서에서 시리아 장군 나아만은 나병에서 깨끗해진 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습니다”(2열왕 5,15)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치유를 통해, 인격적이고 체험적으로 하느님을 알아보았고(יָדַע), 참된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개입이며, 그 은총을 알아차린 사람은 감사의 삶으로 응답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2티모 2,8)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내야 할 신앙의 행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살 것이고, 견디어 내면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2,11-12)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고난 중에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초대입니다. 감사는 고통 속에서도 부활의 약속을 붙드는 신앙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곳”,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청합니다(루카 7,13). 그들은 몸의 치유만이 아니라 공동체로 다시 받아들여지는 사랑을 청한 것입니다.


모두가 치유받았지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 드립니다.”(17,15-16) 감사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며, 구원에 참여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마리아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7,19)고 말씀하시며, 감사로 구원의 문이 열림을 알려주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감사는 믿음의 가장 높은 형태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설교집 358,1)라고 가르칩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일생을 ‘감사와 찬미’로 채웠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창조, 강생, 수난의 사랑 그 모든 것에 감사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천사들, 성모님과 성인들께도 주님께 감사드려달라고 청했습니다(비인준칙 23장).


나아가 하느님 외에 그 무엇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분의 뜻을 실행하고, 이웃과 피조물을 사랑하며 감사의 응답을 했습니다. 그에게 감사는 단지 말이 아니라, 창조와 인간, 고통과 죽음까지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전인적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은총을 ‘받으면서도', ‘돌아가 하느님께 감사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불평을 늘어놓곤 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하느님을 고백했듯이, 감사는 언제나 ‘되돌아감’입니다.


감사는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새롭게 하며, 신앙을 완성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감사의 눈으로 세상과 피조물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하고, 선과 사랑과 정의를 실쳔해야 합니다. 서로의 존재, 작은 배려와 도움, 애정어린 손길에 감사함으로써 진정한 찬미를 드려야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것을 소유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손길에 감사함으로써 행복한 우리였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