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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로마 2,1-11; 루카 11,42-46)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모든 이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2,1-11
1 아,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이
진리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3 아,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심판하면서도 스스로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느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4 아니면, 하느님의 그 큰 호의와 관용과 인내를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그분의 호의가 그대를 회개로 이끌려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5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7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8 그러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쏟아집니다.
9 먼저 유다인이 그리고 그리스인까지,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환난과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10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11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다해 연중 28주 수요일 


의로움과 자비를 실행하는 참 신앙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로마 2,1).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남을 단죄하는 위선적 판단에 대한 강한 경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2,6)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정의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사랑의 진리요 책임임을 밝힙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지만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는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십니다”(루카 11,42). 자비가 없는 위선적 신앙에 대한 고발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른 올바름(κρίσις)이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ἀγάπη) 실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자기몫을 챙기는 데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사랑에서 나오지 않은 외적 준수는 오히려 심판을 부릅니다. 사랑 없는 율법은 혼 없는 육체와 같습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Homiliae in Evangelia II,12)


거짓 의로움과 참된 사랑의 대조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와 치열한 경쟁의 논리에 깊이 물들어 있으며, 이는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는 성공과 생산성, 명성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지만, 그 속에서 많은 이가 외로움과 내적 고통에 시달립니다.


2024년 우울증 환자는 역대 최고치인 110만명에 이르렀고, 그중 젊은 성인층 비율은 18%를 넘어섰으며, 20대의 주요 사망 원인은 여전히 자살입니다. 이는 겉모습과 성과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회가 자비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존재 의미를 상실한 종교성”을 고발합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듯 보이지만,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는 우리의 아픈 현실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식하며 멸시받을 자로 취급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칭찬과 높임을 받을 때도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권고 19). 그는 영적 우월감을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참된 의로움은 자신을 죄인이면서도 사랑받는 존재로 인식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이를 심판하지 않고, 연민으로 바라보며, 겉치레 행위보다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고통의 바다"에 기꺼이 자신을 던진 그의 삶은 ‘회개와 변화’의 표징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마음의 진실로 돌아가라는 초대, 곧 교만으로 물든 정의를 정화하라는 요청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진리에 따른 것입니다”(로마 2,2). 하느님은 겉모습에 속지 않으시고, 마음의 깊은 의도를 꿰뚫어보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비로운 믿음을 살 수 있습니다. 봉사와 선행을 말하면서도, 구조적인 불의와 빈곤에는 눈감는다면, 바이사이들처럼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정의와 사랑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신앙의 길이며, 이미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심판 안에 사는 삶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