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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님의작품들

[스크랩] 존재 그 쓸쓸한 자리 / 이해인


존재 그 쓸쓸한 자리 / 이해인
언젠가 한 번은 매미 처럼 앵앵대다가 
우리도 기약 없는 여행길 떠나갈 것을 
언젠가 한 번은 굼벵이 처럼 
웅크리고 앉아 
쨍하고 해뜰 날 기다리며 살아 왔거늘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풀잎에 반짝이고 
서러운 것은 서러운 대로 댓잎에 서걱인다 
어제 나와 악수한 바람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산다는 것의 쓸쓸함에 대하여 
누구 하나 내 고독의 술 잔에 
눈물 한 방울 채워주지 않거늘 
텅 빈 술 병 하나 씩 들고 
허수아비가 되어 
가을 들판에 우리 서 있나니 
인생, 그 쓸쓸함에 
바라볼수록 예쁜 꽃처럼 
고개를 내밀고 그대는 나를 보는데 
인생, 그 무상함에 대하여 
달빛이 산천을 휘감고도 남은 은 빛 줄로 
내 목을 칭칭 감고 있는데 
내 살아가는 동안 
매일 아침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거늘 
그래도 외로운 거야 욕심이겠지 
그런 외로움도 
그런 쓸쓸함도 없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
 
출처 : 존재 그 쓸쓸한 자리 / 이해인
글쓴이 : 청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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