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사람에게 참으로 큰 공경심과 신심과 신뢰심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그들의 현존에 대해 공경심을, 그들의 자애에 대해 신심을, 그들의 보살핌에 대해 신뢰심을 품어야 합니다.
그들은 현존하고, 당신의 동반자로서만이 아니고 수호자로소 당신 앞에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현존합니다.
비록 그들에게 임무를 준 것은 주님이시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때 큰 사랑으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려울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돌보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수호자들에 대해 신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또 마땅히 해야 하는 만큼 그들에게 공경심을 바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사랑과 공경심은 주님께로 돌려져야 합니다.
우리도 천사들도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는 자격과 사랑과 공경을 받을 자격의 밑바탕을 그분께 두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분 안에서 천사들을 열렬히 사랑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장차 어느 날엔가 우리의 공동 상속자들이 될 것이며,
현재에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담당하도록 세우신 수호자들이요 보호자들입니다.
아직 어린이로서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여하간 우리는 어린이들이고 또 우리 앞에 가로놓인 길은 매우 멀고 또 먼 것만이 아니고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이런 위대한 수호자들의 보호 하에 있는 동안 두려워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들에겐 정복당하는 일도 속는 일도 있을 수 없으며,
더더구나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는 동안 우리를 속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충실하고 슬기로우며 또 능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워 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그들을 뒤따르고 그들에게 매달리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호 밑에 머물도록 합시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축일:8월20일.게시판1324번.
◎ 주님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도다.
1. 지존하신 임의 두둔 아래 사는 너, 전능하신 임의 그늘 아래 머무는 너는, 주님께 아뢰어라,
"하느님께서는 저의 요새, 저의 피난처, 저는 당신께 의탁하외다."하고. ◎
2. 주님께서 정녕 너를 사냥꾼의 올무에서, 모진 괴질에서 구하여 주시리라.
그 나래로 너를 휩싸 주시리니, 그 깃 아래로 너는 숨어 들리라.
그 진실하심은 손방패와 몸방패이시니이다. ◎
3. 너는 밤의 무서움도, 대낮에 날아오는 화살도,
어둠 속을 싸다니는 역질도, 한낮에 쳐 오는 재앙도 무섭지 않으리라. ◎
4. 불행이 너에게는 오지 못하고, 재앙도 네 막사에 얼씬하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도다. ◎
수호 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심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느끼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그 자비심에서 거룩한 천사를 우리의 친구요, 안내자요, 보호자로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과 천사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10월 2일에 우리의 수호 천사를 기념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수호하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신 것은 이미 구약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토비아가 그 여행 중 라파엘 천사에게 인도되었다는 것은 그 예이며,
또 그와 같은 이야기는 야고보, 유딧, 다니엘, 엘리야 및 기타 많은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도 볼 수 있다.
또는 신약 성서를 펴 보더라도 으뜸 사도 베드로가 옥중에서 천사의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다.
성 요셉이 천사의 말씀을 듣고 이집트에 피난했으며, 후에 다시 팔레스티나에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성인들의 일새이나 일반인 각자의 생활에서도 천사의 보호를 실지로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우리는 육안으로 천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보호하심으로 많은 위험에서 구호되었음을 생각지 못한다.
세상에서는 신기하게 위험을 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그것은 순박한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에 의하면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천사가 아이들을 수호하고 있는 것을 명백히 하셨다.
"당신들은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하늘에서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마태 18, 19).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천사를 수호 천사라고 부른다.
이 수호 천사들도 다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시며 육체를 갖지 않으므로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며 우리를 돕는다. 수호 천사는 우리의 행위의 증인으로 우리가 행하는 선악을 낱낱이 목격하고 있다.
만일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항상 곁에 천사가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선에 열심하고 악을 피하게 될 것이다.
무슨 악을 저지르려 할 때에 일어나는 주저심, 혹은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것은 수호천사의 암시인 것이다.
수호천사는 우리의 임종때나 혹은 심판 때에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확실히 우리를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것이 틀림없겠지만,
만일 우리가 생전에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그에게 대한 생각을 잊었다면
그의 도우심도 헛되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축일을 뜻있게 잘 보내야 할 것이다.
천사 天使 angelus. angels
천사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의 직명(職名)이지 그들의 본성(本性)을 가르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천신(天神)이라는 본성을 가르키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본래 메신저를 뜻하는 천사라는 말인 중세초기부터 일반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파견되어(창세 16:7, 19:1-22, 민수 22:22-35)
사람을 보호하거나(창세 24:7, 시편 91:11) 사람을 처벌한다(2사무 24:16, 시편 78:49).
또 그들은 하느님을 모시는 신하요 군대로 인식되었으며(여호 5:14, 1열왕 22:19, 호세 12:6, 아모 3:13),
때로는 하느님의 발현이라고 생각되었다(창세 16:!0, 출애 3:2-14).
아직은 천사라고 불리지 않는 케루빔(Cherubim)은 하느님의 어좌 노릇을 하고(1사무 22:10, 출애 25:18-20, 1열왕 6:23-28),
세라핌(Seraphim)이라는 존재도 거론되어 있다(이사 6:2). 바빌론 유배시기 이후부터 하느님의 절대 초월성이 강조되면서
하느님의 명을 받아 이 세상의 많은 자연현상과 인간역사를 운전하는 천사관이 발전하였다.
욥기, 다니엘서, 토비트서 등 정경과 헤녹서 등 위경과 묵시문학을 통하여 천사론이 전개되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욥기 1:6, 2:1, 다니 3:92, 지혜 5:5),하늘의 아들, 거룩한 자, 거룩한 사자, 수호자, 귀인, 영(靈)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들은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전한 영체이므로 음식이 필요 없고(토비 12:19),
그들은 수가 대단히 많고(욥기 33:23, 다니 7:10) 4∼7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천사들의 역할에 대한 사상은 그 전 시대와 비슷하여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도와 주고,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사람을 벌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 즉 악마의 구별이 생기고, 개인이나 도시나 나라의 수호천사라는 개념이 발전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 직전 시대에 사두가이파는 천사를 부정하고, 바리사이파와 에세파들은 천사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정경에는 미카엘(다니 10:13, 12:1) 가브리엘(다니 8:16, 9:21) 라파엘(토비 3:!7, 5:4) 대천사의 이름이 나타나 있고
위경(헤녹서)에느 우리엘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신약성서의 천사관은 후기 유다이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천사는 하느님의 메신저로 사람에게 파견되고(마태 1:20, 루가 1:!1, 사도 8:26), 꿈에 나타나고(마태 2:13),
흰 옷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난다(마르 16:5). 그들은 창조된(골로 1:16) 영체이며(히브 1:14), 하느님의 군대요(마태 26:53),
그리스도를 섬기고(마태 4:11, 루가 22:43) 사도들에게 봉사하고(사도 5:19, 12:7-10),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마태 18:10).
마침내 그리스도는 천사들에게 옹위되어 심판하러 오시고(마태 16:27, 24:31),
모든 천사들을 지배하신다(마르 13:32, 골로 1:16, 필립 2:10, 히브 1:5).
신약의 서간에는 구약의 묵시록에서는 천사들이 하느님의 도구로서 하느님의 심판의 천지개벽을 주관하고 있다.
교부들의 천사관은 성서와 유다이즘과 이교도들의 관념까지 혼합된 것이지만
차츰 천사의 본성은 창조된 영체요, 자유와 지혜를 가지고 창조되었으므로 그중 일부는 타락하여 악마가 되고,
착한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요, 인간의 수호자가 되었다고 사유하였다.
고대 말기의 디오니시오(Dionusius Areopagita)는 네오플라토니즘적 도식과 성서에 나오는 천사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구품(九品)의 천사 계보를 꾸몄다.
즉 세람핌(熾品), 케루빔(智品), 좌품(座品), 주품(主品), 역품(力品), 능품(能品), 권품(權品), 대천사, 천사의 아홉 등급이다.
물론 이 구품천사론은 그의 신학이자 교회의 교리는 아니다.
천사론에서 가톨릭 신자가 믿어야 할 교리는 꼭 한 가지밖에 없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 감각의 대상인 세상과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 Denz. 428, 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 Denz. 1783].
그러나 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역할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다느니,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등등의 학자의 주장에 대하여 교회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린 일이 없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위경에 나오는)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고(745년, 라테란 공의회),
삼대(三大) 천사의 축일과(9월 29일) 수호천사의 기념일(10월 2일)을 제정하여 천사공경을 장려하고 있다.
(鄭夏權) 가톨릭대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