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老母)의 우거지 국
"너 좋아하는 우거지국 끓여 놓았는데
늦더라도 집에 와서 저녁 먹어라.”
낮에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오늘,다른 곳으로 발령난 동료가 있어
같이 저녁 먹기로 했는데 어떡하지요?"
"약속 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만 먹고 집에 와서 먹어라.
사 먹는 밥이 살로 간다냐!"
"그럴께요..될 수 있음 일찍 갈게요.”
전화를 끊고 다 끝마치지 못한 일을 붙들고
끙끙대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저녁 먹으러 오라는 말씀이
머리를 자꾸 맴돌았습니다.
내일 모레 지천명을 바라보는 아들,
혼자 밥 먹는 것 보기 싫다며
나 올 때까지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 계실겁니다
어머니,아버지 당신들 드시려고
우거지국을 끓이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즘 시험공부한다고 새벽잠을 드는 당신의 손주들,
그리고 늘 바삐사는 아들 먹일려고 끓이셨을겁니다
대단한 음식도 아닌,특별하게 맛있는 요리도 아닌
우거지를 씻고 다듬으시면서,
평범한 저녁 준비를 하고 국을 끓이시면서,
국솥 위로 푹푹 솟아오르는 뜨거운 김을 보면서
자식,손주들과 함께 나누는 밥 한 끼를 생각하셨을 겁니다.
펼쳐진 일감들을 그대로 둔 채 하던 일을 멈추었습니다.
오늘 못 끝내면 내일 하기로 했습니다.
동료와의 저녁은 초밥 몇개로 떼우고-
마침 그 동료도 어제 외식을 하다가
체해서 속이 안좋다하여-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에 당도할 때쯤은 해넘이 무렵이었습니다.
숨을 멈추고 올려다 본 서쪽 하늘은
어릴 적 저녁 하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저런 하늘 아래서 날 저무는 줄도 모르고
놀고 있노라면 “ 밥 먹어.”하고
길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땅바닥에 그어 놓은 금을 그냥 둔 채,
구슬이나 딱지를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거나
흙 묻은 손에 쥔 채 집으로 달려갑니다.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오르고 흐릿하고
푸르스름한 이내가 집의 허리를 감싸며
천천히 마을을 감돌 때면
집집마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네.”대답을 하지만 그냥 가는 법이 없습니다.
두 번 세 번 점점 커지면서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야 그제서 일어섭니다.
지금 어머니가 그 소리로 저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제가 집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뜨끈뜨끈한 우거지국에 금방 담은 겉저리 김치를 넣어
먹는 저녁밥은 넉넉하고 풍성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 몇 주는 무슨 일로 바빴는지
우리 다섯 식구 오붓이 하던
저녁식사 자리도 거르고 지나갔습니다.
늙고 병드신 어머니가 몇 번이나 더 저녁 먹으라고
저를 부르실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땅따먹기 하느라 땅바닥에 그어 놓은
금을 그냥 둔 채 달려오던 날처럼
저는 어머니의 추녀 밑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연보랏빛 개망초 채 피기도 전에
며느리를 묻고서 돌아서 울 수조차 없었던 슬픔을
가슴 속에 오롯이 묻어두고 차마 버리지도 못할
세상 살아오신 내 어머니..
자식 향한 파리한 모정 하나로 갖은 풍상
모질게 다스리며 질기게 이어온 당신의 헝클어진 삶의 매듭,
헹구고 또 헹구며 수십번의 계절을 마중하고
또 보낸 세월에 어느덧 솜털처럼 가벼워진
아, 가난한 내 어머니.
굽어있는 당신의 등을보며,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입니다
검디검던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을 보며
눈물만 하염없이 흐릅니다
초저녁 잠 많으셔서 졸린 눈 부비며
늦은 귀가길의 아들에게 밥은 먹었냐며 춥지는 않냐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시는 당신..
세상에서 단 한분 이신 나의 어머니, 당신을 사랑 합니다..
당신이 정성을 다해 차려주신 우거지국이 놓인
오늘 저녁 식탁,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만찬이었습니다
-어머니란 스승이자 나를 키워준 사람이며,
사회라는 거센 파도에 나가기에 앞서
그 모든 풍파를 막아내주는 방패막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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