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수환(스테파노)추기경님회고전

[스크랩] 김수환추기경 앨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 학생들(1934.2)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추기경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1941.11.8)
앞줄 왼쪽 끝이 추기경
일본 상지대학 유학시절(1941~1943)
왼쪽은 동창 박철

역경의 시절, 학병
앉은 이는 전석재 신부

 

일본 유학중인 한국인 신부, 신학생모임(1943.11.20)
앞줄 외쪽 안경 쓴 이가 김정진, 그 옆이 최석우
뒷줄 가운데 안경 쓴 이가 추기경, 그 왼쪽이
최익철(신학생 시절),맨 오른쪽은 한공열 신부

가족사진(1944.1)
앞줄 가운데 추기경의 이모님과 어머니(안경쓰신분), 뒷줄 왼쪽부터 셋째 형님(필수) 내외, 추기경,넷째 형님(동환,당시 신학생),큰 누님,작은 누님

 

사제 수품자들과 함께한 소신학교 동창들(대신학교 1950.4.15)
앞줄 신종호 신부, 김정진 신부, 최석우 신부 뒷줄 추기경(당시 신학생),한사람 건너 김재덕 신부, 최석호 신부, 김영일 신부, 최익철 부제, 지학순 신부(왼쪽부터)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재학 시절(1936)
맨 뒷줄 오른쪽 끝이 추기경

 

사제 서품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1951.9.15)
1951년9월 15일. 나는 주님의 부르심에 ''세상에서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겠노라''는 결정적인 대답을 한 것이다.

군종 신부로 입대하는 형님 김동한 신부와(대구 주교관 앞.1951)

 

대구 대목구장 비서 시절(1953.6.19)
메리놀 외방전교회 출판부장이 대구 대목구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왼쪽 왼쪽부터 캐롤 몬시뇰, 최덕홍 주교, 메리놀 외방전교회 출판부장

어머니 서중하 여사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아들 둘이 신부 되는 것을 보시고 4년 가까이 신부인 아들을 위해 함께 사시며 기도로써 도와 주시다가 1955년 3월에 향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김천 성의여자상업고등학교 제 1회 졸업생들과(1955.12.15)

 

첫영성체 기념(김천 성당.1955.11.1)

 

최석우 신부의 부제 수품 기념(명동성당.1950.3.20)
왼쪽부터 추기경(당시 신학생),장대익 부제,최익철 부제

김 스테파노 초대 마산 주교 기념 상본

김수환 서울 대주교 착좌 기념 상본 앞

 

김수환 서울 대주교 착좌 기념 상본 뒤

교구장좌 착좌
"교회는 주일만의 교회가 아니라 생활 속에 교회와 신앙을 뿌리박고 교회 안에 사회를 심어 주고 성직자는 교회 안에 교회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 나라 천주교는 신앙을 구하러 교회에 찾아오는 방식이었으나 앞으로는 사회속으로 찾아가는 자세로 교회를 이끌도록 하겠습니다."(경향신문 1968.4.29)

 

교황 바오로 6세 알현

 

추기경 서임(로마 베드로 대성전. 1969.4.30~5.1)
"(추기경 임명 소식을 처음 들은 곳은) 일본 후지산 기슭에 있는  ''작은 자매회'' 수련원에서였지요.
죠치대학 재학 시절의 은사였던 게페르트 신부님께서 전화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 때 제가 처음으로 한 말은 ''임파서블'' (불가능하다)이라는 한마디였습니다.
교회 일로 로마에 들렀다가 일본을 거쳐서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 나가기 위해 택시에 오르기 직전이었습니다.
택시 속에서도 반신반의하면서 1킬로미터 아래쪽에 위치한 성신학교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신자들이 꽃다발을 안겨 주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실감으로 느껴졌습니다" ( <주간조선> 1969.4.6 인터뷰)
 
 

추기경 반지 수여

 

대주교 김수환 추기경 서임 (1969.4.28)
명동대성당

 

대주교 김수환 추기경 서임 (1969.4.28)
명동대성당

 

출처 : 김수환추기경 앨범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