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 저도 웃으며 투병하겠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이해인 수녀의 기도
[중앙일보] 2009-02-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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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TV를 틀어놓고 추기경님의 흔적을 남김없이 눈과 귀에 담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너무나 슬픕니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이별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추기경님도 환자고, 저도 환자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반년 이상 병원에 머무셨습니다. 저 역시 지난해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입원해서 같은 층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때 추기경님께서는 휠체어를 타고 제 병실로 놀러 오시곤 했습니다. 저 역시 가끔 추기경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선 비몽사몽 앓으시는 와중에 영어로 “하우 두유 필 디스 모닝?(How do you feel this morning?) 아임 파인 생큐(I’m fine, thank you)”라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일부러 “아이 러브 유”나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란 말씀을 던지시곤 빙긋이 웃으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더 잡수시라고 말씀드리면 “시인이 먹으라니까 더 먹어야지”라고 응대하셨습니다.
암 투병하는 제게 “항암치료를 견뎌내다니 대단하다”며 칭찬도 하셨습니다. 병석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기력이 많이 쇠해지셨던 추기경님께서 어느 날 예쁜 모자를 쓰고 제 병실을 찾으셨습니다. 좋아 보이신다고 말씀드리자 “내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이오”라며 웃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선 고통 중에도 모든 대답을 유머 속에서 하셨습니다.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 김수환 추기경이 2007년 10월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성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한 자화상 ‘바보야’ 앞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 |
추기경님은 일생의 지표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로 삼으셨습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사셨던 추기경님께서는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그리 사셨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아픈 사람까지도 보듬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한 인간으로서 골고루 햇살을 비추는 햇빛 같은 분이었습니다. 어버이로서 스승으로서 고루 덕망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떠남이 있다는 걸 저는 병석에서 더 분명히 느낍니다. 죽음이란 삶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 그러나 그 길에도 마침의 점이 있다는 것을 추기경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선 하루 한 순간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인 듯 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교훈을 그분의 죽음이 줍니다.
인품으로써, 보편적인 사랑으로써 일하시던 추기경님. 이제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은 눈물이 흐릅니다. 저도 웃으며 투병하겠습니다. 하루하루 겸손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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