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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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추기경, 김수환 스테파노께서 선종하셨다. 그를 애도하는 강추위 속의 긴 인파를 보도하면서 모든 신문과 방송은 사랑, 감사, 평화라는 보통 때는 쓰지 않던 희귀한 단어들을 앞부분에 커다란 글자로 닷새 내내 쓰기 시작했다. 긴장과 갈등, 폭력과 범죄 보도에 익숙해온 매스컴의 첫머리에 등장한 사랑, 감사 그리고 평화라는 메시지는 차라리 매스컴의 기적이라 부를만하다. 따듯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그간의 매스컴 속에 그만큼 희귀했기 때문이다. 추기경의 선종으로 나타난 사회 속의 긍정의 변화를 매스컴은 명동의 기적이라는 말로 불렀다. 평화는 내가 남에게 ‘밥’이 되어 줄 때 이루어진다는 그의 ‘져주는 철학’, 그의 화려한 이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난하고 청빈한 삶, 죽은 몸의 각막까지 떼어 가난한 이들에게 돌려주고 간 희생과 헌신의 삶은 갈등과 투쟁, 증오와 미움, 집착과 탐욕에 찌든 우리들 모두에게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성의 기회를 갖게 했다. 그래서 긴 추모의 인파는 통회하며 고해의 차례를 기다리는 고백소 앞의 죄인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추기경께서는 그간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삶의 세계를 다시금 상기 시켜 주셨다. 나만을 위해 살던 세계에서 남을 위한 삶의 세계에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해 주신 것이다. 한마음 한 몸 운동본부의 장기기증자 수가 그 짧은 장례기간 중에 세배나 증가했다는 사실이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눈뜨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닌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리더십과 경쟁력을 입에 달고 산다.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갖추어야하고,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나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누누이 외쳐 대왔다. 개인적 출세와 경제적 부의 성취에 도움이 되는 리더십과 경쟁력에 치우친 나머지, 도덕과 남을 위한 배려는 잊고 살았다. 그런 배려는 추기경의 말씀대로 ‘바보 같은 삶’으로 치부하며 살아 온 게 우리다. 종교와 지역에 상관없이 명동에 모여든 수십만의 남녀노소 추모인파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이고,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본다. 추기경은 권력과 부로 사람을 끌어당긴 것이 아니다. 정직했고, 약속을 잘 지켰고, 주어진 책임을 다했고, 용서했고, 남을 존경하고 배려했다. 그것이 그 주변에 사람을 끌어당기게 했다. 그가 억지로 당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끌려왔다. 권력과 부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도덕과 배려의 카리스마가 그의 리더십의 본질이다. 오늘날 이 시점에서 국민들이 바라고 희구하는 리더십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리더십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간 우리가 추구한 경쟁력은 부의 성장과 축적을 위한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도덕과 배려를 상실한 경쟁력은 오히려 파괴력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경험했고, 지금도 그것 때문에 국가가 정체되고 있음을 안다. 영어, 과학, 창의력 있는 인재와 기업을 키워서 성장의 경쟁력을 키우기도 해야 하지만, 도덕과 배려의 경쟁력을 우리 국민들 마음 속에 키우지 않으면, 성장의 경쟁력은 파괴의 폭탄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은 남에 대한 배려가 진정한 경쟁력임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리더십과 경쟁력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 문용린 요한 보스코┃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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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천주보 제2024호 추기경의 바보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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