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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 기도

죽음을 묵상하는 가을

죽음을  묵상하는 가을

 

엘 그레코 /‘죽음을 묵상하는 성 프란치스코와 레오 수사’ /밀라노 브레라미술관 /캔버스에 油彩 /108cmx66cm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죽음을 묵상하는 가을


“죽음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묵상하는 현대인이 과연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죽음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깊은 물음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인간이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가능하면 죽음을 피하려는 것 역시 인간의 다른 한 면입니다.  영생, 영원을 그리워하는 인간 그리고 죽음!  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젊음의 힘으로 펄펄 넘치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단 한 순간 생명이 끝나는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자만하던 사람이 불치의 병 앞에 두려움에 떨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두려움의 바닥에는 이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어떤 괴물보다 두려운 이 죽음이란 현실 앞에 인간은 그리고 나 자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을까요?
이 그림을 보면 한 수도자가 해골을 소중한 보물처럼 손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고 다른 수도자는 아예 무릎을 꿇고 경배라도 하듯 그 해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혐오스러운 해골을 이렇듯 경건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역설적으로 죽음의 힘의 막강함이 전해져옵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그런데도 우리들은 마치 눈만 질끈 감으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기라도 한 듯 외면하고 싶어합니다.  위험에 내몰리면 머리만 풀숲에 들이박고 꼬리는 환히 드러내놓는 꿩의 도피와 우리 인간들의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다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죽음의 상징인 해골을 경외로 가득찬 자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이렇게 소곤거리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십시오.”
죽음은 사실 우리의 일상 안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살아있는 몸도 매일 죽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수많은 세포들이 죽고 또 새로 생겨납니다.  매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족 또한 각 개인의 죽음없이는 가족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꽃잎이 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않고 겨울의 죽음 없이는 봄의 새싹도 없습니다.  
여기서 아주 소중한 진리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모든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림 윗 부분을 보면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림 배경은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적막이 깔려있습니다.  수도자의 표정은 너무도 온화하고 경건합니다.  해골이 말해주듯 죽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죽음은 결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삶도 새빛을 얻습니다.  죽음의 암울함이 깃들어 있는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죽음으로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사랑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사람에게 인생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부활하신 분의 생명 안에 살아가는 하느님 사랑의 증거가 됩니다.
아무리 두려워하고 회피해도 죽음은 결코 우리를 빗겨가지 않습니다.  회피할수록 죽음은 무서운 괴물보다 더 공포스럽게 우리를 옥죄고 죽음의 그림자에 갇혀 살아가게 됩니다.  그림에서 보듯 죽음은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평온한 수도자의 얼굴-그것은 죽음은 생명으로 가는 통로요 문이라는 것을 말없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만물이 겨울의 죽음을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죽음을 묵상하고, 삶 안에 다가오는 자기포기의 순간, 한 걸음 쑥 다른 차원의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가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함께 기도하는 곳에 사랑이 움틉니다.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지상의 고통과 기쁨 속에서 찾아 마지 않던

참생명을 주님 품안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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