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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

' 바람의소리 '

 

김영동의 음반 '바람의 소리'

 

01. 바람의 소리 (Windsongs)

02. 메아리 (Echoes)

03. 노을 (Sky At Sunset)

04. 열락 (悅樂, Joy)

05. 해후 (邂逅, The Encounter)

06. 흘러가네 (Flowing Away)

07. 사랑의 춤 (Love Dance)

08. 이별 (The Parting)
09. 산행 (A Mountain Stroll)
10. 귀소 (Homeward Bound)
11. 영가 (詠歌, Song Of Spirits) II

 

전곡듣기는 제가 직접 올린 파일과 다른곳에 올려진 곡들을 전곡듣기로 만든 것 2가지 입니다.  일단 제가 직접 올린 파일로 만든 건(위에 있는 전곡듣기) 재생 도중 음악이 건너뛰는 경우가 있어서 다른 곳에 링크 된 곡을 전곡듣기로 만든 파일(밑에 있는 전곡듣기)을 동시에 재생 하도록 하였습니다. 위에 있는 전곡듣기 파일을 중지 시킨 후 밑의 우리소리 링크 파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김영동 '바람의 소리' 전곡듣기♬

 

♬김영동 '바람의 소리' 전곡듣기(우리소리 링크)♬

 

 

01. 바람의 소리 (Windsongs)

 

처음 들리는 소리는 바람을 부르는 소리와 같다. 그러나 이 소리는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고무호스를 돌려서 내는 소리이다. 곧이어 훈이 beat 없이 연주되며 Electric Guitar의 어울림과 함께 편안해짐을 느낀다.

 

훈 : 김영동, Eletric Guitar : 함춘호, Synthesizer : 한송연

 

훈(Hun) : 훈은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쓰이던 흙으로 구운 악기이다. 원래는 지공(指空)이 5개였으나 중국과 대만에서는 지공(指空)이 8개로 늘어 다양한 음정을 내도록 개량되어 사용되고 있다. 훈의 소리는 바람의 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흙소리 같기도 하다.

 

01. 바람의 소리

 

02. 메아리 (Echoes)

 

소금과 기타의 서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북과 Acoustic Guitar가 전반의 리듬을 이끌어 간다. 묵직한 남성코러스와 함께 무절제한 듯 연주되는 Tapo, 간주 이후 Electri Guitar의 거친 Adlib, 그 위에 여유있게 흐르는 소금의 선율이 매혹적이다.

 

소금 : 김영동, Tapo : 유경화, Acoustic GuitarEletric·Guitar : 함춘호, Synthesizer : 박용준, 타악 : 최윤상·나원일·박승원, Chorus : 김두범·안점상·신재훈·김홍민

 

타포(Tapo) : 미국 인디언들이 쓰는 나무로 된 악기이다. 음색이 마치 서양 타익기인 마림바와 비슷하나 소리가 맑고 영롱해서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악기 자체에 음정을 지니고 있으나 이번 음반에서는 음정보다 음색에 주안점을 두고 연주하였다.

 

02. 메아리

 

03. 노을 (Sky At Sunset)

 

가을 저녁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느끼는 애상을 표현한 곡이다. 철현금의 흐르는 듯한 선율과 농현을 통해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철현금 : 유경화, Synthesizer : 한송연

 

03. 노을

 

04. 열락 (悅樂, Joy)

 

태평소:이용구 타악:방승환,조진형,박영주,양근수,이상훈,

Synthesizer : 한송연

 

04. 열락

 

05. 해후 (邂逅, The Encounter)

 

페루 악기인 Quena와 Synthesizer, 그리고 여성 Voice가 어우러지는 편안하고 감성적인 연주 음악이다. 원래 beat가 없는 무절주 음악은 호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 호흡을 쫓다 보면 음악에 쉽게 몰입할 수가 있다.

 

기나(Quena) : 김영동, Voice : 차은주, Synthesizer : 한송연

 

기나(Quena) : 페루의 민속 관악기이다. 우리나라의 단소와 같은 악기인데, 단소의 음색보다 굵고 힘이 있다.

 

05. 해후

 

06. 흘러가네 (Flowing Away)

 

철현금과 대금의 이중주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뒤안길을 회고해 보는 음악이다. 원래는 가사가 있는 노래곡이었다.

 

대금 : 김영동, 철현금 : 유경화, Guitar : 송혁규, Synthesizer : 한송연

 

06. 흘러가네

 

07. 사랑의 춤 (Love Dance)

 

철현금과 타악기 그리고 Synthesizer로 구성되었으며무용음악 '겁(劫)'에 사용된 음악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춤을 연상하여 만든 곡이다.

 

철현금·장고 : 김영동, Synthesizer : 한송연

 

철현금 : 일제 시대 후 줄을 타는 김영철 선생께서 기타(Guitar) 울림통을 크게 개조해서 거문고 처럼 연주하던 악기이다. 오른손은  거문고와 같이 술대를 사용하여 연주하며 특히 우리 음악의 특징인 농현을 하기 위해 왼손으로 Roller를 사용한다. 얼핏 들으면 기타소리 같기도 하지만 Sliding 주법에 담긴 소리의 울림과 깊이는 매우 독특하다. 자세히 들으면 우리의 울림이 들린다.

 

07. 사랑의 춤

 

08. 이별 (The Parting)

 

대금 : 김영동, Guitar : 송혁규

 

08 . 이별

 

09. 산행 (A Mountain Stroll)

 

철가야금 : 민의식, Guitar : 송혁규

 

09. 산행

 

10. 귀소 (Homeward Bound)

소금 : 김영동, 가야금 : 이주은, Guitar : 송혁규

 

10. 귀소

 

11. 영가 (詠歌, Song Of Spirits) II

 

1960년경 생겨난 일종의 음성수련의 음악이다. 음, 아, 어, 이, 우 다섯 모음만 가지고 하는 음악으로 인간의 영적인 소리를 깨우친다는 의미가 있는 음악이다. 이번에 본인이 악기와 소리를 전부 연주해 보았다.

 

훈,단소,철현금,Tapo,Voice : 김영동

 

11. 영가

 

새 음반을 만들면서

 

몇 해 전부터 주위에서 새 음반을 만들지 않느냐는 물음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가 그리 쉽지도 않았고, 80년대 나의 작업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번 작업이 쉽지많은 않았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음반은 새로운 음악에 대한 제시와 더불어 그동안 해왔던 국악대중화적업의 일환이다.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훈과 Electric Guitar의 조화(바람의 소리), 철현금의 선율로 이루어진 음악(노을, 사랑의 춤), 페루 전통악기인 Quena와 여성 Voice의 만남(해후)등 새로운 악기의 개발과 함께 기존 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보았다.

 

이를 통해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의 경계선을 뛰어 넘으며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이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제시해 본다. 이번 음반이 새로운 음악의 試金石(시금석)이 되었으면 한다.

 


▲ 문봉선 作 '해풍 1'/화선지에 수묵

 

바람을 기다리며 듣는 김영동의 [바람의 소리]

 

이종민(한겨레 필진 네트워크,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새벽 2시. 후두둑! 비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소란스럽습니다. 조립식 지붕이라 그런지 빈 그릇처럼 조그만 빗줄기에도 호들갑을 떱니다. 머리가 어지럽다며,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 손잡고 한참을 우시던 안방 어머니, 잠 못 이루고 뒤척이시는 것은 아닌지, 살며시 문을 열어봅니다. 아무런 기척도 없습니다. 아들이 왔다고 후유, 안심이 되어 잘 주무시는 것인가? 때아닌 비바람으로 요란 방정스러운 밤, 귀에서 무슨 바람소리 같은 것이 난다고 성화시던 어머님 방은 오히려 고요하기만 합니다.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그것은 바람의 움직임(風動)도 아니요, 깃발의 나부낌(飜動)도 아니요, 마음의 움직임(心動)일 뿐이다”라 했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혼자 있을 때면 그렇게도 생생하던 귀울림(耳鳴)이 아들이 사랑방에서 자고 있다는 생각 하나로 이내 사라지고 말다니...... 아버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접하는 어머님의 눈물바람에 심란하기만 했던 마음도 잘 주무시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조립식 양철 지붕을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비바람쯤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흔히 바람이라고 표현하는 중풍(中風)을, 한의학에서는 혈압이나 혈전 등 심장이나 혈관의 질환으로만 보지 않는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의 외도(外道)를 전해듣는 순간 입이 돌아가는 병(口眼渦斜)에 걸리고 만 부인, 증권폭락 소식에 반신마비가 되어버린 실업자, 애지중지 외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에 실명을 해버린 어머니 등도 이런 ‘마음의 바람’을 맞은 예라 할 것입니다. 가슴속 가파른 성정으로 인한 뜨거운 바람(熱風)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마음의 불(心火)에 데이고 만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바람은 또 다른 바람을 몰고 옵니다. 봄바람이 불면 ‘바람이 납니다.’ 담장 너머 흐드러진 개나리에 마음 싱숭생숭해 하는 ‘동네처녀’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삽 자루를 고쳐 잡는 농부나, 밤새워 낑낑대며 새로운 생활계획을 다짐하는 새내기 신입생의 마음에도 바람은 들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일깨우는 춘풍에 동하여 모두 ‘바람이 난’ 것입니다.

 

“사월의 감미로운 빗줄기가/ 삼월의 가뭄을 뚫고 뿌리에 닿을 때면”으로 시작되는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서곡?에서는 하늬바람의 ‘감미로운 입김’에 ‘바람이 난’ 사람들을 실감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계절을 마감하고 생명의 세상을 되돌려준 신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마음에 순례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그 하나라면, 추위로 잠시 주춤했다가 되살아난 에로스의 열정으로 사랑의 짝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다른 하나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세속화에 저항하다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캔터베리 대주교의 순교를 기리며 되살아난 신앙심을 다지려는 순례자들 가운데에는 여섯 번째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나선 바쓰지방의 당찬 여장부처럼, 말 그대로 ‘바람이 난’ 이도 끼어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밖의 바람은 같지만 그것이 일으키는 내면의 바람은 이렇듯 다를 수 있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에는 전혀 바람을 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은 분명 영감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둔한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먼지만 일으키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바람은 분명 생명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운이 말라버린 가지에는 꽃도 잎도 피우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먼지만 풀풀 날리는 마음에는 사랑의 온기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합니다.

 

 

무지개를 보면 콩콩 뛰는 가슴, 그것이 어제 그런 것처럼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라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간절한 염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는 그의 조바심은, 바람이 불어도 영감을 받지 못하는 마음에 낙담하던 그의 친구 콜리지(S.T. Coleridge, 1772-1834)의 한탄과 이어질 것입니다.

 

봄바람에 동하는 것이 춘정(春情)이라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추정(秋情)도 있을 겝니다. 흔히 ‘봄처녀’와 ‘가을사내’를 대비시키기도 합니다만 봄타고 가을타서 ‘바람나는’ 데 남녀가 따로 있겠는지요? 노란 은행잎이나 붉은 단풍잎,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들이 어찌 남자들 마음만 뒤흔들어 놓겠느냐, 이 말입니다.

 

지난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열심히 땀을 흘린 이라면 결실의 계절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이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살랑거리는 가을 바람에 보탤 것이고요.

 

어떤 이는 재생의 씨앗과 그것의 밑거름이 되어 줄 낙엽을 “마법사에 쫓기는 유령들처럼 몰고 가는” 가을바람에서 거듭남을 촉구하는 예언의 나팔소리를 듣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처럼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스스로를 태워본 적이 있는 사람은 붉은 단풍잎에서 마지막 작열하게 헌신하는 사랑의 불꽃을 읽기도 합니다.

 

바람에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서늘한 가을 기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바람날’ 잠재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지난 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부부가 쌍으로 바람을 피웠습니다. 대학시절 한참 열중했던 포크 가수들의 공연장을 찾은 것입니다. 그날따라 때아닌 가을비는 추적추적 나리고 기온도 한겨울 못지 않았습니다. 야외공연을 강행하기에는 참으로 얄궂은 날씨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들은 두꺼운 방한복을 챙겨 입고 우산을 든 채 어색한 동작으로 박수까지 쳐대며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오 천명이 넘는 관객 중 어느 누구도 억수같은 비나 추위가 무서워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람이 나지 않고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짓’을 우리 모두는 당당하게 해냈습니다. 대중 스타들에 넋을 놓아버리는 우리 아들딸들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이런 열정이라면 못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바람이 나도 한참 옹골지게 났던 것이지요. 그런데 과하면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고,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너무 추워 친구들과  뒤풀이를 하지 않고 헤어진 것이 동티를 낸 것인지, 접촉사고를 내고 만 것입니다.

 

바람이라는 게 참 묘한 것입니다. 전혀 없어도 배를 띄울 수 없는 것처럼 문제이지만 너무 심해도 배를 뒤집어엎고 맙니다. 바람도 적당히 나야 생명의 기운이라 할 수 있지 지나치면 가족은 물론이요 자신의 생명 자체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인가 봅니다. 함부로 부는 것이 아니니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살이를 아름다운 소풍으로 비유했던 천상병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바람에도 길이 있다] 전문

 

그렇게 조신(操身)하는 마음으로 김영동의 [바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 곡은 80년대를 풍미하며 창작국악계를 이끌던 그가 10여년 동안 침묵하다가 내놓은 ‘야심에 찬’ 명상음악 음반의 타이틀곡입니다. 그간의 작업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한발작도 내딛지 못하던 그가 문묘제례악에 쓰이던 훈(壎), 철현금, 혹은 페루의 전통악기 퀘나(Quena) 등 이색적인 악기에 힘입어 새로운 음악의 경지를 개척하려 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이 음반입니다.

 

 

허나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새로운 음악의 시금석을 제시하겠다는 그의 ‘야심’이 제대로 충족되었는지는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괜히 새로운 악기를 찾아 헤매지 말고 전공인 대금을 가지고 몸부림을 해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정쩡한 크로스오버나 퓨전은 어설플 수밖에 없습니다. 정공법을 써야지 잘 안 풀린다고 에돌아 가서는 우리음악의 창조적 계승도 전통의 현대화도 모두 다 놓치기 십상입니다. 우리 음악의 지평을 넓히기는커녕 우리 악기의 한계만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 곡만 해도 흙으로 빚은 악기가 바람을 만나 내는 ‘자연의 소리’가 전자기타 및 신디사이저와 어울러져 따스한 감동의 화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새로운 악기 찾기에 열중하다가 소재에만 연연하는 어설픈 작가의 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염려삼아 해보는 것입니다.

 

작곡자 자신의 설명대로 처음 들리는 소리는 “바람을 부르는 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바람에 우주자연의 섭리가 실려있으니 그것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훈이라는 악기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바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니 훈이 바람을 부르는 주문(invocation) 정도로 이해를 해도 될 듯 싶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호스를 돌려서 낸 것이랍니다. 김영동의 장난기 어린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부름에 응하여 훈이 낮고 부드러운 음으로 답을 합니다. 곧이어 전자기타와 신디사이저가 한데 어울러져 조급한 우리들 성정을 쓰다듬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선하게 다가  옵니다. 이후 진행되는 훈과 전자기타 및 신디사이저의 풍성한 주고받음도 히말라야 아니면 안데스 깊은 산중의 태고적 울림으로 우리들 마음을 감싸줍니다.

 

오랜 참선을 마치고 할(喝)하는 대승선사의 득도송(得道頌)이 훈의 소리라면, 이에 감격한 세상사람들의 화답은 전자기타의 떨림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신디사이저의 넉넉한 화음은 이런 모습에 흐뭇해하는 우주자연의 너그러운 미소로 볼 수 있겠고요.

 

훈이란 악기는 한,중,일에서 공히 쓰이던 흙으로 구운 악기입니다. 원래는 지공(指空)이 앞쪽에 셋, 뒤쪽에 둘, 다섯 개였으나 중국과 대만 등에서는 여덟 개로 늘려 다양한 음정을 낼 수 있도록 개량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음색이 다소 어둡다고 할 수도 있지만 흙과 바람이 만나 내는 소리인 만큼 따스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점점 더 살벌해지는 세상사에 몸과 마음 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음악에 자주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 피우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강퍅해지기만 하는 세상 인심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세상을 불가피한 것으로 체념하는 우리들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둔한 마음에는 바람이 바람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애타게 불러대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풍랑이 두려워 배를 띄우지도 않은 채 상황 탓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 속 번잡한 욕심과 코앞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근시안만 버릴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우리를 부르는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움직여 바람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고이면 썩는 것이 물만이 아니니 말입니다.

 

바람이 특히 빈번한 이 계절, 휘날리는 낙엽을 핑계삼아서라도 바람 한번 피워보시지요. 은행잎을 닮은 ‘노란 바람’도 좋고 단풍잎을 빙자한 붉은 연애바람도 좋을 것입니다.

 

바람은 살아 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행복하십시오!

 


▲ 변시지 作 '무제'

 

바람의 소리  

 

임진모 (3D3Djjinmoo@izm.co.kr">3Djjinmoo@izm.co.kr">3Djjinmoo@izm.co.kr">jjinmoo@izm.co.kr">3D3Djjinmoo@izm.co.kr">3Djjinmoo@izm.co.kr">3Djjinmoo@izm.co.kr">jjinmoo@izm.co.kr) 주간조선 1999/07

 

1980년대에 국악이 그나마 대중 속으로 파고든 것은 김영동이란 존재가 있어서 가능했다. 국악의 대중화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삼포가는 길'이나 '창작동요집' 같은 당시 그의 앨범은 어떤 가요음반 못지 않게 잘 팔렸다. 그가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탓인지 일각의 국악 진영에서는 그의 '대중노선'을 탐탁치 않게 여기기도 했다.

 

오랜만에 김영동이 새 앨범 <바람의 소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이 될 법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예전의 신념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국악이 대중화되는데 박차를 가해야 하고 이번 작품 역시 그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신보 제작에 임했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대중화 작업을 시작한 만큼 결실도 자신이 나서서 맺도록 하겠다는 자세다.

 

물론 1980년대 작업에 새롭게 추가된 점이 있다. 국악을 이 땅에 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에도 전하려는 의지다. 음악의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는 세계로 나가야 할 우리 음악의 주체를 국악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과연 국악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 그는 국악이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려면 우리의 패턴만을 고집해 가지고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우리의 것과 그네들의 것이 동등하게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록곡 가운데 머릿곡인 '바람의 소리'에서 김영동은 중국 일본 한국 등 극동지역에 있는 제사악기 '훈'을 분다. 앨범 자켓에 보이는 '기나'라는 이름의 악기는 페루의 관악기다. 김영동은 '해후'에서 이 악기를 연주했다. 또 '메아리'에서는 미국 인디언 타악기인 '타포' 연주가 들어가 있다.

 

이를테면 딴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인이 연주한 너희 악기 소리가 어떤지 들어 보라'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남의 악기와 우리 전통 악기들인 태평소 칠현금 대금을 섞어 한편의 온전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는 근래의 크로스오버 음악이 아티스트의 태도나 악기사용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같은 시도를 감행했다고 한다. 동서(東西)음악의 '평등 결합'이랄까.

 

음악은 진지한 그의 지향과 관계없이 아주 쉽고 편안하게 들린다. 감상자들은 이것이 어떤 악기, 어느 나라 악기인지 몰라도 충분히 음악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바람의 소리'는 플라스틱 호스를 들려서 낸 소리와 훈, 그리고 기타 신서사이저가 뒤섞여 독특한 크로스오버 사운드를 창조하고 있다. 만약 외국인이 이 곡을 듣는다면 '한국의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할 것 같다.

 

소란함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필요한 '조용한 호수'가 여기 있다. 이것은 분명 명상음악이다. 댄스와 록에 젖어 격정의 소리에 중독된 젊은 세대는 자신을 차분하게 이끄는 소리를 접하기 어렵다. 대중음악 수요자들이 이 크로스오버 음반을 들어야 할 이유다. 그간 우리들은 너무 딴 나라의 시끄러운 소리만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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