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의 동영상

" Don't Cry For Me Argentina - Madonna "

 
          Don`t Cry For Me Argentina - Madonna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 It won"t be easy, you"ll think it strange 여러분들에게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지 않아요 When I try to explain how I feel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That I still need your love after all that I"ve done 이 모든 것을 이룬 이후에도 여전히 당신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죠 You won"t believe me 당신들은 날 믿지 않을 거예요(믿기 힘들 거예요) All you will see is a girl you once knew 당신 앞에 서있는 이 소녀가 당신이 알던 그 아이라는 것을 Although she dressed up to the nines 비록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있기는 하지만 At sixes and sevens with you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당신 앞에 서있는 것이랍니다. I had to let it happen; I had to change 난 이렇게 해야만 했어요; 난 변화를 가져와야 했어요 Couldn"t stay all my life down at heel 내 삶을 저 밑바닥 인생으로 팽개쳐둘 수 없었어요 Looking out of the window, staying out of the sun 저 태양 빛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창 밖만 바라볼 수 없었어요 So I chose freedom 그래서 난 자유를 선택했어요 Running around trying everything new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던 거죠 But nothing impressed me at all 하지만 아무 것도 내게 감동을 줄 수는 없었어요 I never expected to 물론 나도 무언가가 스스로 내게 그래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진실로 난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답니다. All though my wild day 지금까지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My mad existence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I kept my promise 난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왔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그러니 나에게서 멀리 떠나지 말아요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재산이나 명예나 I never invited them in 난 그런 것들을 초대한 적이 없어요(욕심을 낸 적이 없어요)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desired 비록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열망할지 모르지만 They are illusion 그것들은 환상에 불과하죠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비록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랍니다.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진정한 해답은 여기 이곳에 항상 있어요 I love you and hope you love me 난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이제 더 이상 울지 말아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진실로 난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답니다. All though my wild day 지금까지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My mad existence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I kept my promise 난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왔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그러니 나에게서 멀리 떠나지 말아요 Have I said too much?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There"s nothing more I can think of to say to you 이제 당신들에게 할 말이 더 생각나지 않네요. But all you have to do is look at me to know that every world is true 하지만 이제 절 지켜보면 이 모든 말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와 팀 라이스(Tim Rice)가 두 번째로 발표한 뮤지컬 에비타(Evita)에 나오는 곡이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Juan Peron)의 아내 에바 페론(Eva Peron)의 애칭으로서 실제 그녀의 생애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클럽의 댄서 등을 거쳐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던 에바 두아르테(Eva Duarte)는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후안 페론은 대통령의 되어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로 등극하지만 그러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에바 페론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1978년 6월 21일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Prince Edward Theatre)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공연되고 있으며 1997년에는 알란 파커(Alan Parker)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화제를 모았다. 에바 페론 역에 마돈나(Madonna)가 캐스팅되었는데 마돈나가 부른 "Don't Cry For Me Argentina" 는 다시 한 번 큰 인기를 얻었다. 1976년 줄리 커빙턴(Julie Covington)에 의해 처음 불려진 이 곡은 마돈나 이외에도 존 바에즈(Joan Baez), 사라 브라이트먼(Sarah Brightman),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 시네이드 오코너 (Sinead O'Connor)등 많은 가수들에 의해 노래되었다. Evita ( 에비타 1996 )
        원작 : 앤드류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 팀 라이스 (Tim Rice) 감독 : 알란 파커 (Alan Parker) 각본 : 알란 파커 (Alan Parker), 올리버 스톤 (Oliver Stone) 출연 : 마돈나 (Madonna), 안토니오 반데라스 (Antonio Banderas) 출연 : 조나단 프라이스 (Jonathan Pryce) 음악 : 앤드류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 팀 라이스 (Tim Rice)
시골 가난한 농부의, 그것도 사생아라는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출생의 에바 마리아 두아르떼. 그녀는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시작해서 라디오 성우를 거치며 자신을 천대해온 세상을 비웃어줄 수 있는 출세를 위한 야망을 키워 나간다. 영화배우라는 꿈으로의 첫걸음을 내딛을 즈음인 1944년, 지진으로 인한 난민구제모금 기관에서 에바는 노동부 장관인 후안 페론 (조나난 프라이스) 을 만나게 된다. 이 우연한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에바의 운명을 단숨에 뒤바꾸어 버린다. 후안 페론과 에바의 결혼이 임박해 올 무렵, 후안 페론의 정치적 역량이 확장되는것에 위협을 느낀 권력 기관과 군인들은 후안 페론을 체포하게 되고, 페론의 석방운동은 1945년 9월 17일 민중혁명으로 이어져,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추대되기에 이른다. 이로서 에바는 천한 농부의 사생아에서 고귀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로 등극한다.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소외당하고 멸시받았던 약자였음을 잊을 수 없었던 에바는 권좌에 있으면서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서 기금을 모으고,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며 불평 등을 척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감화된 수많은 국민들은 에바를 부통령 후보로 추대한다. 그러나 부통령 후보를 사임한 직후 에바 페론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말기 진단을 선고 받는다. 1952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비탄어린 통곡속에 장엄하게 치러지고, 결코 죽음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에비타의 신화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는다.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의 이야기를 그린 앤드류 로이드의 뮤지컬이 원작으로, 원작 자체가 워낙 정치적으로 말이 많은 작품이라 켄 러셀에서부터 올리버 스톤에 이르기까지, 메릴 스트립에서 미셀 페이퍼에 이르기까지, 근 20년 동안 수십 명의 이름들이 거론되며 기획과 포기가 반복되던 영화다. 우여곡절 끝에 알란 파커가 연출하고, 마돈나가 에비타 역을 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마돈나의 캐스팅으로 아르헨티나 정부의 항의 뿐 아니라 부다페스트의 대주교는 그녀의 교회 입장까지 금지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영화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실패를 거듭했던 마돈나에게 유일하게 호평을 받는 영화가 되었다. 매우 우아한 아름다움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있는 에비타의 이미지를 재현해내기 위해 마돈나의 분장을 위한 화장품을 독점적으로 개발한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는 '에비타 레드', '에비타 프레임', '에비타 플럼' 등의 이름을 붙힌 25가지 품목의 '에비타 화장품'을 개발, '에비타 룩'이라는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였다. 이에 영감을 얻은 칼 라거펠트, 존 갈리아노, 크리스티앙 라크르와 등의 유명디자이너들도 지난 파리 컬렉션에서 '에비타 룩'의 의상을 선보였다. 미국 뉴욕의 최고급 백화점인 블루밍데일에서는 영화 상기간 동안 9개의 '에비타 부띠끄'를 열고 보석, 탱고 드레스, 그리고 그녀가 1940년대 취임식때 입었던 가운 등을 전시하고, 구두, 장갑, 스카프 등의 상품을 개발, 의상과 함께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며, 전세계 패션지에서 앞을 다투어 마돈나의 '에비타 룩'을 톱뉴스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출판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산타 에비타', '에바 페론 전기', '채찍을 든 여자', 그리고 에비타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을 담은 책들이 새롭게 출간되거나 다시 소개되기도 했다. 에비타 에바 페론 ( Evita Eva Peron, 1919-1952, 아르헨티나 ) -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 에비타 - 에바 페론(Eva Peron)은 1919년 아르헨티나의 대초원(팜파스)의 시골 마을 로스 톨도스(Los Toldos)에서 농장 주인과 농장의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에바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주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다섯을 낳았는데 에바는 그 중 네번째 아이였다. 에비타는 사생아로 태어나 어려운 생활로 밑바닥 생을 전전 연극배우와 라디오 성우를 거쳐 페론을 만난다. 그녀의 나이 25세 때 그녀보다 나이가 2배 가량 많았던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만난 뒤에는 지나간 이력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고 총명하면서 야심까지 가득한 페론의 여인이 된다. 두 사람은 한동안 밀회를 즐기다가 곧 두 사람만의 은밀한 방을 구해 장기적인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준 정부 (情婦) 에바에게 새삼 사랑과 신뢰를 느낀 후안 페론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를 맹세하고 결혼한다. 페론은 1946년 2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4%의 지지를 얻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페론이 집권 초기에 이렇듯 승승장구할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식량 수요 증가로 농축산물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벌어들인 외화 덕분이었다. 이런 호황 속에서 추진된 개혁 입법들은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바의 입김 속에서 추진된 일들이었고, 노동자와 여성, 빈민들은 그녀를 성녀로 떠받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답고 총명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호적인 그녀에게 열광했고 적극적인 지지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에비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서 학교, 병원, 고아원을 단기간에 전국에 건립했고, 그녀의 이름을 딴 병원 기차가 의료장비를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또한 에비타 재단은 지진 등 재해를 당한 나라에 거금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콜롬비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도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정책 덕분에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런 위세를 등에 엎고, 심지어는 초등학교에서 매주 페론 부부를 찬양하는 글짓기 숙제를 하도록 했으며,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는 에바의 자서전을 교재로 채택하도록 하기도 했다. 에바 페론은 단순히 퍼스트레이디로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데 상징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정계의 핵심 요직에 올라 명실상부한 권력 2인자에 오르고자 애썼다. 일명,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을 표현하는 말 중에서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라는 말보다 그녀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실제 그녀는 가진 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표독한 영부인이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자상한 나라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에바 페론은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수많은 일들을 초인적으로 처리해갔다. 수없이 많은 노동자, 빈민, 여성들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었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그들을 조직화하여 남편의 정치적 동지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하늘은 에바 페론의 영광을 시기했을까, 고군분투하던 에바 페론은 1952년 척수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때 그녀의 나이 34세였고, 후안 페론을 만난지 10년만의 일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으로 한달 간 성대히 치러졌다. 이 후 그녀의 남편 페론은 아내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미이라로 만들었다. 페론의 집권으로 한 순간에 퍼스트레이디로 변한 에비타는 가난이 한이 되어서일까. 빈민노동자천국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구상, 국가정책의 최우선순위가 빈민구제였고 국가의 모든 재정을 노동자들을 위해 퍼부었다. 아나운서출신이었던 그녀는 명연설가로 아르헨티노들의 심금을 울렸는가 하면 파리 패션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에바의 생애는 가히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이었다고 할 것이다. 평소 영국의 의적 로빈 ?의 열 열한 신봉자였던 에바는 남편인 후안 도밍고 뻬론을 제치고 정권을 쥐고 흔들어 당시 세계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으로 희자 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두 번이나 에비타를 표지의 인물로 선정할 정도였다. 에바는 "빠라 뻬론"(뻬론을 위하여) 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가들이나 부유층의 재산을 탈취 빈민노동자들에게 무상분배해 줌으로써 성녀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던 신념과는 달리 당시 전세계 상류사회 여성들의 유행을 이끄는 호화스런 사치와 낭비는 아르헨 식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에바가 유럽여행을 할 때면 유럽의 패션가가 후끈 달아오를 만큼 자신의 몸치장에 최고만을 고집을 했고 유럽의 사교계는 ‘에바 패션’이 유행되는 추세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무작정 국가재정을 끌어다 무 주택 빈민들에게 아파트를 지어주어 서민들을 감동시켰고 누구나가 무료혜택을 받을수있는 종합병원 등을 각 지역마다 세워 초일류 복지국가건설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 공공지출을 눈덩이처럼 키워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외채에 허덕이는 3류국가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에비타로부터 시작된 포퓰리즘이 아르헨 국민성을 망쳤다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녀의 유언장 마져도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그녀가 진정 아르헨티노들을 위한 '산타 에바'(거룩한 에바)였나를 놓고 열띤 논쟁이 일고 있다. 시내중심가 레꼴레타 지역의 그녀의 묘소에는 아직까지도 매일 추모 행열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아르헨티나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국민모두가 하루빨리 에비타의 망령에서 벋어나야 한다"는 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에비타를 세계적 인물로 부상시킨 것은 뮤지컬이다. 뮤지컬이 없었다면 에비타는 영원히 아르헨티나에 국한된 성녀로 남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웨버가 사후 30년만에 그녀를 세계적 민권운동의 성녀로 환생시킨 셈이다. '에비타'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는 인기 여가수 마돈나가 당시 임신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연을 펼쳐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