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라이스빛 개선문이랄까? 거대한 문이 눈 앞에 버티고 서있다.
정말 큼직한 덩치다. 인도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인디아게이트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가장 넓은 길인 대통령궁 앞길 끝에
이 거대한 문이 서 있다. 절로 떠오르는 파리의 개선문과 비교해보자.
개선문계의 간판스타, 통칭 파리 개선문, 정확히 에투알 개선문이다.
1836년생이니 지은 지 170년 넘은 근대의 산물이다.
나폴레옹의 똥고집과 과시욕이 만들어낸 거대한 문이다.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문이다. 과연 높이는 얼마나 될까?
한번 가늠해보시라. 정답은, 49미터. 저 개선문을 직접
봤을 때 개인적인 느낌은 `뭐 그냥 그렇군'이었다.
예상 이상으로 감동이 적은 건축물이었다.
우선 비현실적인 크기 자체가 감동적이지 않았다.
무조건 크게 짓자는 강박만 느껴진 탓이다. 그리고 모양도
그리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선전용 건축물의 한계다.
물론 뜯어보면 멋진 구석은 가득하다.
문 몸체에 새긴 조각들은 그 포스가 대단하다.
제대로 보면 꽤 들여다볼 것이 많은데, 전체로서의 모양새는
그저 무난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파리 개선문와 저 인디아게이트 중 어느것이 더 높을까?
그래도 파리 개선문이 조금 더 높다. 인디아게이트의 키는
42미터. 7미터 작다.
인디아게이트는 모양이 파리 개선문에 견주면
상당히 단순해지면서 현대적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 그 사이 디자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비록 웅장하고 멋질지 몰라도 저 문은 실은 무척 슬픈 문이다.
저 문을 만든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죽은
인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인도 군인들이 왜 죽었겠는가? 식민지배를 한 영국을 돕다가 죽었다.
그 수가 무려 9만명.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들이 떠오르는 문이다. 그래서 저 문의 몸체에는
당시 희생당한 인도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그러니까 인디아게이트는 개선문이 아니라 추모의 문이다.
모양은 개선문과 같으나 전쟁의 승리보다는
전쟁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조형물인 것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델리의 인디아게이트가 보여주듯
문은 국가적 조형물로 애용된다. 도시의 최고 중심부, 광장에
주로 들어서곤 한다. 이 개선문 또는 기념문 문화는 서양에서
그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것이다.
동양문명과는 다른 서양의 문화, 건축적 특징이기도 하다.
서양의 오랜 기념문 역사에서 보면 파리 개선문과 인디아게이트는
거대한 기념문의 역사에서 거의 신생아 수준이다.
이 기념문 문화가 가장 널리 자리잡았던 것은 로마시대로 추정된다.
로마제국은 곳곳에 개선문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다.
로마시대 개선문은 황제의 공적을 기리는 것들미 많다.
저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로마를 통일한 것을
기념해 312년에 만든 것이다. 그러니 1800살 먹은 문이다.
파리 개선문이 문 하나 짜리 개선문이라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문 3개짜리의 대표선수다. 저 문보다 더 오래된
로마시대 개선문으로는 티투스 황제 개선문이 있다.
로마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고대의 개선문들은 이후
잠잠하다가 이후 다시 부활한다. 유럽을 휘감은 민족주의 열풍속에서다.
제국들이 쪼개지면서 민족국가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포장하고 국민들을 민족국가의 기치 아래 모이도록
강조하기 위해 개선문들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저 파리 개선문이 그 대표라 하겠다. 나폴레옹은 저 지독하게
큰 개선문을 만든 것에서 볼 수 있듯 개선문을 무척 좋아한 사람이다.
그래서 에투알 개선문만 아니라 또다른 개선문도 만들었다.
파리의 카루젤 개선문이다.
이 카루젤 개선문은 그 모양이 앞서 소개한 로마시대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나
티투스 개선문과 거의 흡사하다. 고전의 리바이벌, 아니면 카피,
또는 오마주 쯤 되겠다. 저 문은 1808년이 지었다. 그러니까 저 개선문을
먼저 짓고 보기 좋았던지 나폴레옹은 다시 에투알 개선문을 화끈하게 지은 것이다.
이런 개선문들은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브뤼셀에 있는 개선문이다. 옆의 날개처럼 건물이 이어졌을뿐 역시 고전주의
개선문의 전형적인 모양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 이 개선문은 어떤가?
문 모양이야 뭐 다르게 하기가 어렵겠지만 그 꾸미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유럽은 유럽인데, 정작 유럽 문화권에선 비유럽으로 여겨지는 나라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와 축구 클럽 바르샤로 유명한 도시 바르셀로나에 있는 개선문이다.
역시 가우디의 도시다. 이런 거대 조형물이 꼭 있을 법한 나라라면
역시 웅장한 것 짓기 좋아하기로 빠지지 않을 러시아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당연히 모스크바에도 개선문이 있다.
이 모스크바 개선문달고도 러시아에는 개선문이 많다. 바르셀로나 개선문처럼
그 나라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블라디보스톡 개선문을 보자.
이 블라디보스톡 개선문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지은 것이다. 보기만해도 러시아 건축임을
알 수있을 정도로 나라색이 강하다. 그런데 이 문을 지은 니콜라이2세는
`개선문 업계에선 꼭 기억해둬야 할' 인물이다.
나폴레옹이 개선문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 황제도 개선문 마니아였다.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했으니 개선문을 지으라고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방문한 모든 도시에 똑같은 개선문을 지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가장 길고 넓은 러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부터
서쪽 끝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이 양반 개선문이 있다.
하지만 이 양반은 정작 개선문 세울 일은 하지 않고 개선문만 세웠다.
결국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이 니콜라이 2세를 마지막으로 망하고 말았다.
아, 정말 중요한 개선문을 빼먹을뻔 했다.
파리 개선문 다음으로 유명한 문, 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이다.
베를린에 있는 브란덴부르크문은 1788년 지었다. 그런데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고 베를린도 양쪽으로 쪼개졌을 때
이 문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가 됐다.
그래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 문은 통일 이후에는 통일의 상징으로
180도 바뀌었다. 이렇게 민족주의 국가 탄생과 함께 몰려왔던 개선문은
20세기 들어서도 각광 받으며 세계 주요도시에 지어졌다.
그 이유는 인디아게이트가 들어선 것과 같은 이유, 그러니까 이전에는
없었던 거대 전쟁인 세계대전이 벌어진 결과였다.
얼핏 보면 파리 개선문과 헷갈릴 정도로 비슷한 이 문은 루마니아 부큐레슈티
개선문이다. 1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해 지은 기념문이다.
사진으로 보면 무지하게 웅장해서 파리 개선문 못지않아 보이는데,
실제 규모는 높이 27미터로 에투알 개선문보다는 훨씬 작은 편이다.
그러면 현대의 개선문과 기념문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런 거대한 문들은 대부분 국가 기념 조형물들이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짓는 경우가 많고 그 모양도 심히 촌스럽거나
지나치게 크기만한 것들이기 쉽다.
이런 거대 기념 건축에 빠지지 않는 북한의 간판 건물, 평양개선문이다.
그래도 평양의 다른 촌스런 건물들보다는 덜 심각한 편이라고 치자.
북한과 남한의 공통점이 세계 최대, 동양 최대 이런 것들을
심하게 좋아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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