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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성인의 꿈과희망

' 그리스도를 포옹하는 성프란치스코 / 프란치스꼬 리발다 (성화임) '


제목 :그리스도를 포옹하는 성 프란치스꼬(1620) 작가 :프란치스꼬 리발다(Francisco Ribalta: 1565- 1628) 크기 : 208 X 167cm. 유채 소재지 : 스페인 발렌시아 문예 박물관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서 이웃 나라와 다른 자기만의 특징이 있었는데, 말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교회 자체의 정화와 이단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시작된 반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의 일환으로 시작된 종교재판(Inquisition) 실시에 있어 그 잔인함으로 악명을 떨쳤기에 삼천년대를 시작하면서 교황께서 온 세상을 상대로 한 사과의 큰 소지를 제공했는데, 이런 운동의 대표가 스페인 최전성기의 왕이었던 펠리페 2세(FelipeⅡ: 1527-1598)였으며, 그의 신앙심을 잘 표현하는 건물이 바로 마드리드(Madrid) 교외에 있는 엘 에스꼬리알 (El Escorial)) 궁전인데, 전부 화강암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신정정치(神政政治)의 상징으로 왕궁이면서 수도원, 신학교, 묘지, 성당이 함께 하는 복합공간이며 4000개의 방과 300여개의 수도자들의 수방(修房)과 43개의 성당과 경당이 있는 희귀한 건물이다.

이 건물의 주보는 산채로 석쇠위에서 불타는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신 성 라우렌시오 부제인데, 이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직사각형으로 만들었으며 가운데 돌출된 거대한 직사각형 입면이 석쇠 형상을 상기시키면서 이 거대한 복합건물에 돌과 철로된 석쇠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디자인 모티브로서, 단일 건물로서는 세계 최대이다.

또한 이 궁전은 열심과 광신이 뒤범벅된 당시 왕의 병적일 만큼 철저한 금욕적 기질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다른 왕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적 요소가 극도로 절제되면서 세속 권력의 상징인 왕궁이면서도 하느님께 바쳐진 공간으로서의 웅대함과 고립성에 어울리는 엄숙한 인상이 특징이며, 왕은 자신의 생활공간인 화려한 중정(中庭) 보다 소박하게 꾸며진 수도자들의 수방을 더 좋아 했으며 자기가 지은 이 장대한 건물을 <하느님을 위한 궁전이자 죄인인 자신을 위한 오두막집>으로 표현할 만큼 그의 수덕적 경향은 철저했다.



이 건물이 완공되자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보기 어려운 이 장대한 건물에 어울리는 작품을 남기고 싶은 화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노력에 의해 에스코리알 화풍(畵風)이 형성되었는데, 작가는 바로 이 화풍에 강한 영향을 받아 1599년까지 발렌시아에 머물며 전형적인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작가로서의 자리매김을 하면서 카푸친 수도자들과 우정관계를 가지며 <성 프란치스꼬의 환시: The Vision of St. Francis: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와 위의 작품 등의 프란치스칸적인 주제를 그렸는데, 작가의 에스코리알적인 성향과 당시의 카푸친 영성이 너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기에 작가는 심혈을 다해 카푸친 영성에 심취 공감하면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반종교 개혁으로 표현되는 스페인적 강인한 신심과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의 극단적 추종을 겨냥한 카푸친 영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성 프란치스꼬의 오상>이나 작가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작가는 성 프란치스꼬가 일생 동안 계속해서 추구한 것은 주님과의 완벽한 일치였다고 결론지으며 성인이 체험했던 이 신비적 일치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와 비슷한 내용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것으로 같은 스페인 화가인 무리요(Murillo: 1617- 1682)가 있으나 그, 표현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

그와 각별한 친분이 있던 발렌시아의 카푸친 수도원 형제들의 의뢰로 <그리스도의 피>라는 주제로 제작된 이 작품은 한 치의 여과도 없이 너무도 생생히 그려진 충격적 표현 때문에 현대적 감각에서 보면 아름다운 친근감 보다 섬뜩한 생경스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성 프란치스꼬는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연인을 껴안듯 부드럽게 껴안고 그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마시기 위해 상처 부분에 입을 대고 있는데, 이것은 중세기부터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 공경 찬미가로 신자들의 사랑을 받던 “그리스도의 영혼 (Anima Christi)”과 비슷하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성체는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혈은 나를 열광케 하시고,

그리스도 늑방에서 흘린 물은 나를 씻겨 주시며

그리스도의 수난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소서 “

당신을 향한 극단의 사랑으로 고통에 일치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간절한 프란치스꼬의 열망을 확인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쓰고 계시던 가시관을 벗어 프란치스꼬의 머리에 씌우심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프란치스꼬를 받아들이시면서 사랑 없이 살 수 없고, 고통 없이 사랑할 수 없으며 더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배워야 한다는 사랑의 지혜를 힘차게 제시하시고 있다.

주님과 성 프란치스꼬의 완벽한 일치를 확인한 천사는 주님께서 가시관의 고통에서 해방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화관을 바치고 있고 왼편의 천사는 이 거룩한 일치를 기리기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상 삶을 사시면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의 가치를 강조한 프란치스칸 영성의 절묘한 표현이다. 즉 프란치스꼬가 오상체험을 통해 주님의 고통을 받아들임으로 주님께서는 잠시나마 당신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너무도 순박한 인간적인 표현이다.

왼편 아래 부분에 성인은 오상의 흔적이 있는 발로 왕관과 사자의 머리를 밟고 있는데, 이것은 성 프란치스꼬가 세속적 영광과 주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의 칠죄종(七罪宗)을 더 없이 경멸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왕관은 세속적 영광의 상징이며 일곱 마리가 되는 표범과 사자는 영적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도 힘겨울 만큼 강인하게 덮치는 죄의 유혹을 상징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도자들이 바쳤던 주일 끝기도 성경소구는 베드로의 첫째 편지5장 8절인데, 작가는 이 내용을 통해 관객들에게 수덕적 교훈을 주고자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작가가 활동하던 조금 전 시대 마태오 바쉬오(Matteo da Bascio: +1552)가 1525년에 시작한 카푸친 개혁 운동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개혁세력으로서 요원의 불꽃처럼 유럽에 퍼지게 되었는데, 에스꼬리알 전통을 받은 작가의 심성은 바로 이런 강인하고 철저한 영성 운동에 감화를 받게 되어 프란치스꼬의 모습을 개혁자의 모습으로 생각했기에 주님 궁전에서 천상의 낙을 즐기는 평화로운 수도자가 아니라 생기 없고 부패한 교회와 수도회에 복음적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강인한 모습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주님의 십자가를 안고 있는 성 프란치스꼬의 모습은 다른 작품과 달리 더 없이 투박하고 자애로움 보다 퉁명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의 수도복 역시 전통적인 성화에서 표현되는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의 옷으로서 우아한 느낌 보다 성서에 (마르꼬 1장 6절) 나타나고 있는 낙타 털옷을 입은 세례자 요한을 생각게 하는데, 색깔이 다른 여러 조각의 천을 모아 만든 것으로 마치 불교 선승(禪僧)들이 세상 사람들이 입다 버린 헌옷을 기워 만든 가사(袈紗)인 분소의(糞掃衣)처럼 거칠고 척박한데, 이것은 양적으로는 대단한 성장을 이루어 외적인 기득권을 확보하고서도 안일과 타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프란치스칸 카리스마를 쇄신하기 위해 시작한 카푸친 개혁 형제들이 추구하던 엄격한 가난의 가치를 강조하고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장면을 그린 많은 다른 작품에서 성 프란치스꼬의 천상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부드럽고 안온하게 묘사함으로서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작가는 여기에서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분의 고통을 끌어안는 능동적인 모습으로서 성인을 드러내고자 했기에 튼튼하고 우람찬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프란치스꼬의 오상체험에 대한 신심은 13, 14세기에 여러 신비 신학자들이나 영성가들에게 주님 수난의 사랑과 십자가 공경에 대한 큰 열망을 일으켰으며 이것이 과거처럼 교의적이나 관념적으로 표현된 게 아니라 감각적이며 신체적으로 표현됨으로서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생기있고 친근한 신심이 되었는데,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미구엘 산체스(Miguel Sanchez)가 지은 다음과 같은 신비 시에 대단한 감동을 받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 시의 내용을 표현하고자 했다.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모든 피를 다 쏟으신 순결한 어린양이시여!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은 인간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기에 내 앞에 너무도 무력하게 두 팔을 벌리고 당신을 안아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귀하고 순수한 영혼이여 나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부드러운 눈길을 저에게 주소서.”

어떤 이유로든 이 작품은 일반적인 다른 성화와 달리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품은 못되나 성 프란치스코의 이해에 대한 우리의 통합되지 못한 왜곡되고 미숙한 시각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순간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를 재산관리 같은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 새들에게 설교나 하고 사나운 늑대나 길들이는 사람 같은, 현실 삶의 책임과 부담에서 면제된 낭만적이고 새콤달콤한 알사탕 같은, 삶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기에 친근한 존재로 생각하나 성인은 이 작가가 강조하고 있듯 복음에 대한 극단의 투신을 하셨으며 현대 수도신학이 수도생활의 존재 이유로 제시하는 복음적 급진성(Radicalism)을 자신의 삶으로 산 증거자임을 힘 있게 제시하고 있기에 성인의 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프란치스칸 가족들이 시작하는 9일기도의 주제로서는 참으로 적당하면서도 좋은 작품이다.

<이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