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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수도복 차림의 티투스 / 렘브란트 "


제목 : 수도복 차림의 티투스(Titus in a Monk"s Habit :1660) 작가 : 램브란트(Rambrant Hamensz van Rijin:1606- 1669) 크기 : 유화 : 79.5 X 67.7cm 소재지: 네델란드 . 암스텔담. 라우스 미술관 ( Rijksmuseum )

빛과 혼(魂)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올해로 탄생 400주년을 맞으면서 화란이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당시 사회 수준으로선 중산층에 속하는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친가는 당시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전파된 개신교인 칼빈주의로 개종한 반면,그의 어머니는 끝까지 가톨릭 신앙을 지켰기에 그 안에는 개신교적인 피와 가톨릭적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출생 배경은 서로 다른 두 성격의 크리스챤 신앙을 조화시켜 그 작품에는 누구나 부담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 폭과 깊이가 있다. 많은 자화상, 초상화, 풍경화를 그리면서도, 크리스챤으로서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 다운 특징이라면 당시 많은 종교화는 작가의 생계 수입이 될 수 있는 후원자의 주문에 의해 그리는 통례를 벗어나 그는 돈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많은 화가들이 험난한 인생 행로를 통해 정상에 오르는 반면 그는 운 좋게도 교육에 관심을 가진 부모의 도움으로 언어 학교에서 당시 국제어 수준인 라틴어를 배우고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당시 수준으로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알찬 인생 수업을 할 수 있었고, 자녀의 예술적 자질을 발견한 부모의 섬세한 배려에 의해 능력 있는 스승 아래서 본격적 미술교육을 받아 화가로서 단단한 기반을 쌓을 수 있었다.

이런 행운과 노력의 결실로,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방앗간집 아들로서 과분한 성공과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었고. 자기 가문과는 비길 수 없는 고위 관리와 변호사를 둔 상류층인 샤스키아와 결혼하면서 신분 상승의 튼튼한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성서를 주제로 한 많은 종교화 외에도, 100여점의 자화상과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이 작품은 사랑하는 아들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그의 인생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작가로서의 성공과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시집 온 상류계급 출신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과 결혼 하는 등, 그의 생애는 찬란한 빛의 삶이었지만, 또 다른 면에 그에겐 큰 어두움이 있었는데, 경제적인 파탄과 가정 문제였다.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많은 수입이 생겼지만, 그에게는 이상한 낭비벽이 있어 과거 유럽 유명 작가의 작품 구입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함으로 말년에 파산 선고를 받게 된 것과, 그가 낳은 자녀들이 모두 어린 시절 죽음을 맞은 것이다.

세 아이를 잃은 후 1641년 이 작품의 주인공인, 티투스를 네 번째로 얻었는데, 늦게 얻은 아들이라 대단한 애정을 가진 것은 물론 이고, 이 아들이 작가의 삶에 차지했던 비중은 대단했다.

사랑하는 첫 번째 아내인 사스키아와 사이에 태어난 그는 불과 28세의 나이로 작가 보다 한 해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작가에게 또 다른 애물단지로서 슬픔의 씨앗이 되었지만, 그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스무살 때의 모습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적갈색 곱슬머리에다 안정된 미소를 짓고 있는 수려한 용모의 젊은이의 모습인 그는, 이미 늙은 아버지에게 너무도 마음에 드는 아들이었으며 그의 용모 뿐 아니라 상냥하고 재치있는 그의 성격 때문에 작가는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아들 칭찬에 침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작품을 주문하기 위한 고객들이 찾아오면 그는 고객들의 수준에 맞게 작가인 아버지의 실력을 설명하여 이 아들의 매력적인 설명으로 고가로 작품 주문을 받을 만큼 그는 화가인 아버지의 작품 홍보대사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사랑하는 외아들에게 프란치스꼬 수도복을 입혔다.

티투스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몇 개월 후에 태어난 유복녀를 남기고 1668년 세상을 하직했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도 아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간혹 작품에 등장시키는 예가 있으나 개신교 신자인 작가가 자기 아들을 프란치스칸으로 등장시킨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먼저 비록 개신교 신자이긴 해도 작가가 프란치스칸과 어떤 호의적인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려 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다음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패와 천박함의 상징으로서의 부정적인 수도자에 대한 이미지가 있을 수 있는데, 예외적으로 그가 이런 모습을 그린 것은 가슴에 품고 있는 이상을 아들에게 투사한 것이다.

화가로서의 인정과 명성, 지체높고 부유한 가정의 규수를 아내로 맞음으로서 인간적인 야망과 신분상승의 욕구를 최대한으로 충족시켰으나, 세 명의 자녀와 겨우 한 살된 아들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운명적 아픔과 자신의 절제없는 성격으로 인한 낭비로 인한 경제 파탄은 그의 인생 여정은 빛과 어두뭄이 교차하는 극단의 질곡의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어두운 운명에서 아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그는 세상 재물이나 명성은 아예 포기하고 복음 하나로 철두철미한 삶을 살았으며,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이상적이고 행복한 인간상을 발견하고 이것을 아들을 통해 투사하고자 했다.

그가 그린 수많은 자화상과 초상화는 하나 같이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표정인데 비해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들은 미소짓는 모습으로 그렸다. 남루하지만 정갈스럽게 기워진 갈색의 수도복에 쌓인 티투스의 얼굴은 앞에서 쏫아지는 빛을 받아 더 없이 맑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빛과 어둠을 절묘히 조화시킨 이 작품에서 작가는 거칠고 낡은 것이지만 정갈스럽게 기운 갈색의 수도복이 상징하는 수도로 다듬어진 인간상을 너무 깨끗하고 해맑은 얼굴의 티투스와 조화시켰다

작가는 자신의 모든 염원과 사랑을 투사한 이 작품에서 미래에 닥칠 가혹한 운명을 예견하면서, 이것을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듯 가난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낡은 수도복에 몸을 감싼 더 없이 우아하고 고귀한 아들을 묘사한 것은 다음 성서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어둠이 나를 덮씌워서 빛인 듯 밤이 나를 휘감는다면 ” 할 때에도 어두운 그것 마저 당신께는 어둠지 않아 ,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이다.(시편 138; 11- 12)



제목: 밀밭의 수도자 (The Monk in the Cornfield: 1646)
소재지 : 위와 같음
이 작품은 참으로 충격적인 내용이다. 타락한 수도자가 육욕을 채우기 위해 수도복을 입은 채 소녀를 밀밭으로 유인해서 겁탈하려는 장면이다. 순회 생활을 하는 수도자이기에 여러 유혹에 접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게 마련이나 이 장면은 아무리 이해심이 강한 사람이라도 충격적인 내용이다.

작가가 활동할 당시 화란은 칼빈파의 개신교가 큰 세력으로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개신교 지방에 있을 수 있는 반성직주의 (Anticlericalism)의 강한 성향이 있었기에, 이 작품은 종교개혁의 타당성을 제시할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부패상 고발에 효과적인 내용이었으며 작가의 고향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고발하는 내용의 그림이 많이 유행하고 있었다.

작가는 단순히 이런 지역 정서에 편승하기 보다는 원죄의 업보를 타고난 인간의 허약한 모습을 통해 인생의 근본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엄격한 칼빈주의 정서가 지배적인 당시 사회에서 성에 관한한 대단히 건강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녔기에, 이태리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린 많은 관능적인 냄새가 풍기는 작품을 아무 거부도 없이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을 만큼 그는 성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작가는 성서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통해 영혼의 상승을 기원하는 크리스챤 신앙의 많은 것을 표현했으나, 실재적인 그의 삶은 영과 육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나날이었으며, 이 작품을 완성할 즈음에는 대단한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다.

겨우 한 살이 되는 아들 티투스를 남기고 아내가 죽으면서 아들의 유모로 들어온 헨드리케 스토필스는 작가와 근 스무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으나, 그의 관능적인 성격은 그녀를 아들의 유모 이전에 불륜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그전에 또 한명의 정부(情婦)인 게르테 디르크스가 있었기에 이들간에 삼각관계를 만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방탕생활에 빠지고 복잡한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다.

당시 사회에서 인정받고 알려진 명사로서의 문란한 여성 편력이 알려지면서 그의 명성에도 손상을 가져왔고, 엄격한 청교도 윤리를 강조하는 개신교 칼빈파 성향이 강한 암스텔담 사회는 이것을 곱상스럽게 볼 수 없었기에 그에게 치명적인 불명예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두 명의 정부는 작가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법정에 고소전을 벌임으로서 작가는 안팎으로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으나 ,관능적인 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작가는 이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삶을 계속하게 된다.

헨드리케와는 결혼하고 싶었으나 망설인 이유는 그녀와 결혼 하면 당시 법으로 전처로부터 받은 유산상속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보류하면서 애정도 없는 불륜관계를 계속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타락한 수도자가 벌리는 질퍽한 성희(性戱)의 장면을 육체의 움직임과 같은 관능적인 요소를 배제함으로, 현대적 의미의 포르노가 줄 수 있는 관능에의 자극이란 위험을 배제하고 교훈적인 시각으로 이 장면을 보게 만들면서 타락한 수도자의 모습에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

그는 대단한 명성을 얻은 작가로서의 외적으로는 성공한 인생이지만 복잡한 여성관계에 묶여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을 타락한 수도자의 모습에 투사했다.

프랑스 시인인 폴 글로델의 평가대로 그의 작품에서는 특별한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이것을 꿈, 최면상태, 갇힌 듯한 상태, 과묵한 타락한 듯한 밤의 느낌, 어둠에 집중하고 있는 날카로운 정신이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무디어져 간다는 느낌과 같은 것이며 , 이 작품에서 특히 이런 면이 강조되면서 관능에의 유혹 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안에 있는 어두움의 깊은 심연을 바라보면서 숙연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빛과 혼의 화가로 평가되는 작가는 이 작품에서 색채의 빛과 어둠 뿐 아니라 인간 삶의 빛과 어두움을 수도자라는 빛의 상징과 같은 존재에 표현함으로서, 타락한 수도자와 경건한 수도자라는 이중미학(二重美學)의 설정을 통해 어두움에 대한 절망과 빛에 대한 강한 희망을 자극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 욕망의 정상에 오른 처지에서 인생의 진실에 눈뜨게 된다 ‘작가로서의 명성, 여기에 따르는 재산, 번뇌가 있는대로 두 명의 정부 사이를 오가며 누릴 수 있는 쾌락 등, 그는 욕망의 정상에 올라서서야 욕망의 허구성에 눈뜨게 된다.

수도복을 입힌 자기 아들의 모습을 통해 어둠의 심연에서 터득한 자신의 인생 철학을 투사하면서 행복하고 인간다움 삶의 상징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눈떴기에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적빈의 상태에서 누구못지 않게 고귀한 삶을 살았던 성 프란치스코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설정하게 된다.

그는 관능의 올가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기의 삶과 정반대인 프란치스코와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이룰 수 없는 염원을 아들을 통해 투사하고 자 했다.

해맑은 얼굴에 쏫아지는 빛이 갈색 수도복의 어두움과 대비되면서 하느님을 삶의 모든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수도자의 모습이 이 세상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길 수 없는 고귀함으로 다가온다.

불교의 선승들이 입은 분소의 처럼 한점 빈틈이 없이 기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 없는 수도복을 걸친 젊은 티투스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 사람의 평화로움이 잔잔한 미소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 평화로운 미소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삶의 진실의 표현이다

프랑스 시인 폴 글로텔은 1935년 <네델란드의 미술>이라는 글에서 이 미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그림을 제외하고 그가 그린 많은 초상화나 자화상은 하나 같이 평온한 모습을 짓고 있는 것이 없다. 모든 얼굴은 극적이고 힘겨워 보인다. 무리지어 하나의 태도에 집중하는 인물들은 거의 언제나 폭풍 직전의 고요와 같은 가벼우면서도 심각한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무거운 운명을 지고 있다. 그들은 그 운명을 정확히 평가하면서 순간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추적하고 있다.“

중년의 남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성과 쾌락을 섭렵하고 있는 작가가 이런 영적가치에 눈뜨게 된 것은 그가 비록 관능의 끈끈한 늪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처지였으나 성서적 주제를 그림으로 영적 가치에 눈뜨게 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타락한 수도자를 통해 하느님을 떠난 자신의 방탕한 모습을 고발하면서, 경건한 수도자의 모습인 아들 티투스를 통해 욕망의 늪에서 헤어나 변화되고픈 자신의 희원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어쩌면 성 아우구스티노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전적인 동의와 함께 깊은 그리움을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 우리가 당신을 향해 창조되었기에, 당신 안에 쉬기까지 안식이 없습니다.”

작가는 두 개의 상반되는 수도자의 모습을 통해 성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권고를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요. 그래야만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기어 악의 도구가 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2- 13절)

< 작은 예수회 이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