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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성인의 꿈과희망

"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 아싸시의 성 프란치스코 (4) "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지상에서 천상의 삶 사신 위대한 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4)

주님 당신 고통 겪으며 완벽한 일치 추구 순명과 기도로 부 권력에 빠진 교회 일으켜

 
매 순간 순간이 중요하다. 밥 한끼 먹을 때도 중요하고, 잠잘 때도 중요하고, 공부할 때도 
중요하다. 살아서 숨 쉬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잠으 ㄹ제대로 자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인생 공부를 
제대로 매 순간마다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마련해 놓으신 형성적 
원리를 성취해 낼 수 없다. 알아야지 실천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그 모범을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 본다. 그 중 하나가 순명이다. 프란치스코는 늘 매 순간의 삶을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았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 하는님께서 은총을 통해 보여주신 것, 하느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위해 절대 순명하며 살았다. 이러한 순명의 삶이야말로 프란치스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덕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또 다른 모범을 꼽으라면 기도 생활을 들 수 있다. 
사실 청년기의 프란치스코는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늘 방탕하게 살았고,세속적 
행복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기도하는 사람으로 돌변한다.
첫 번째 계기는 중병을 앓았을 때였다. 사람은 아프고 고통 받으면 모두 어린아이가 되낟. 
하느님께 매딜린다. 어쩔 수 없이 매달린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한다. 
프란치스코도 그랬다. 병으오 고통을 받으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도생활은 이처럼 시작이 중요하다. 
일단 시작해야 하느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것이다. 
츠란티스코는 그러나 단순히 '시작'의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다. 헌걸음 더 나아간다. 
그때도 계기가 있었다.
기도생활을 시작하고 또 열심히 기도를 하다보면 내적이든 외적이든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차원 높은 관상으로 가는 체험들이다.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관상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제는 철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프랑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 이 음싱이 프란치스코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앞에서 이미 보았다.
프랑치스코의 기도생활의 경지는 점점 더 깊어만 갔다. 27세의 청년이 마태오 복음을 묵상한다. 
예수님이 112사도를 파견하는 대목이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마태 10.8-9)
이 말씀은 평생동안 프랑치스코성인을 따라다녔다. 게다가 성경을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완벽하게 삶으로 실천해 낸다.
성경 말씀에 대한 관상에서 더 넘어가자 하느님은 이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오상의 은총을 
베푸신다. 
오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생긴  두 손과 두 발의 상처와,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요한 19.34)를 말한다. 프란치스코에게도 똑같은 상처가 생겼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똑같은 고통을 겪ㄱ은 것이다. 
이는 성인이 예수님과 완벽하게 일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완벽한 기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완벽한 일치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치는 선종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죽음을 앞도고 
"땅에 뉘어 달라"고 했다. 땅의 품에, 자연의 품에 안기겠다는 참으로 낮은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세계 형성의 관점에서는 예수님 다음 가는 
존재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부와 권력의 유혹에 빠져 들어가고 있던 교회를 청빈과 단숨함, 순명, 기도의 완성을 
통해 다시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교회의 초월적 변화를 이끌었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위대한 성인의 삶을 짧은 지면에 옮긴다는 것 자체가 송구스럽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위대하다. 그는 지상에서 살았지만. 가장 완벽하게 천상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다. 이 짧은 내용이나마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단 한 사람의 영혼에게라도 
자극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