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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 일도

~ 성녀 아네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성무일도 ~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침기도

 

1월 22일 연중 제 3주일 제1저녁기도

 

1월 22일 연중 제 3주일 제1저녁기도 후 끝기도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 

 

3세기 후반이나 4세기 초반 로마에서 순교했다. 다마소 교황은 성시로써 성녀의 무덤을 장식했고, 성 암브로시오를 비롯 많은 교부들이 성녀를 칭송하였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동정녀들]에서
(Lib. 1, cap. 2.5.7-9; PL 16 [edit. 1845], 189-191)

 

그는 고통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으나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동정녀가 천상 생명으로 태어난 날입니다. 우리 모두 그의 정결을 본받읍시다. 오늘은 순교자의 탄일입니다. 우리 모두 희생 제물을 바칩시다. 오늘은 성녀 아녜스의 탄일입니다. 그는 12살 때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이 어린 소녀마저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 그 잔인성은 정말 가증스럽습니다. 이렇게 유약한 나이의 소녀에게 증거를 보인 신앙의 힘은 진정코 위대합니다.


그의 어린 몸에 상처를 입을 자리가 있었겠습니까? 칼을 받을 자리마저 없었던 아녜스는 그 칼을 이겨낼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나이의 소녀들은 부모님의 성난 얼굴마저 견디지 못하고, 또 모르고서 바늘로 한 번 찔리기만 해도 중한 상처를 입기나 한 듯 보통 울고 맙니다.


그러나  성녀 아녜스는 사형 집행인의 피 묻은 손 아래서도 두려움을 몰랐고 쨍그렁거리는 육중한 쇠사슬로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온몸을 난폭한 병사의 칼에 내 맡기고, 비록 아직 죽음을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강제로 신전의 제단에 끌려 나아가 불 가운데 놓여졌을 때 그리스도께로 손을 펼쳐 그 불경한 제단 위에서 주님이 거두신 승리의 표시를 나타냈습니다. 아녜스는 자기 손과 목을 쇠 차꼬에 집어 넣을 자세가 되어 있었지만 그의 작은 지체를 조여 맬 쇠사슬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순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고통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으나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전투는 힘들었지만 월계관을 받기는 쉬웠습니다. 아직 나이 어렸으나 덕행의 교훈을 주었습니다. 결혼하는 신부라 할지라도 이 동정녀가 즐거운 표정을 지니고서 형장으로 급히 달려갔던 그만큼 급히 신방에로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동정녀는 댕기머리 대신에 그리스도로, 화관 대신에 자신의 덕행으로 머리를 단장했습니다.


모든 이가 울고 있었지만 그만은 울지 않았습니다. 그가 맛보기 시작하지도 못한 자기 생활을 흡사 모두 맛본 것처럼 이제 아낌없이 내맡기는 것을 볼 때 사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직 법 앞에서 책임질 나이도 되지 못한 그가 하느님의 증인으로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볼 때 모두 놀랐습니다. 그가 인간을 위해 증거를 내세웠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지만 하느님을 위해 내세웠기 때문에 그 증거를 믿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자연을 초월하는 것은 자연을 지으신 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형 집행인이 어떤 위협으로 그를 겁먹게 만들고 어떤 달콤한 말로 꾀려 하고 또 얼마나 숱한 약속을 하면서 결혼을 간청했겠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녜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유혹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남편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나를 먼저 택한 사람이 나를 소유할 것입니다. 사형 집행인이여! 왜 지체합니까? 내가 원치 않는 눈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이 내 몸을 속히 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녜스는 일어서서 기도드린 후 머리를 숙였습니다.


여러분은 사형 집행인이 흡사 자기 자신이 단죄를 받은 듯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어린이는 자기가 당할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 어린이가 당할 위험을 앞에 두고 그의 오른손은 떨리고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하나의 희생 안에 여러분은 두 가지의 증거, 즉 정결과 신앙의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아녜스는 동정도 간직하고 순교의 팔마도 얻었습니다.

 

동정녀의 수호성인 성녀 아녜스
 
 
성녀 아녜스의 순교에 대한 기록 가운데 정확하거나 신뢰할 만한 것은 없지만, 전해오는 순교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 6세기경에 만들어진 온전한 형태의 순교 전기가 있다.
 
이에 따르면 아녜스는 로마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소녀였다.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꿈꾸며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녀의 미모에 반한 로마의 귀족 청년들이 끊임없이 청혼하였다. 이에 아녜스는 천상배필인 예수 그리스도께 순결을 서원하였다며 모든 청혼을 거절하였다.
 
그즈음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304년경)가 일어났다. 구혼자들은 아녜스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을 고발하였다. 위협과 고문을 통하여 그녀의 마음을 바꾸어 결혼하려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녜스는 겨우 13세의 어린 소녀였으나 굳은 신앙으로 모든 고초를 참아 받았다. 재판관은 고문이 효과가 없자 그녀를 사창가로 보내 정조를 빼앗고 모욕을 주려 하였다. 사창가의 무지막지한 남자들이 아녜스를 범하려 달려들었으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정결을 지킬 수 있었다.
 
몹시 화가 난 재판관은 그녀를 참수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아녜스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꽃봉오리 같이 어리고 순진한 처녀의 사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성녀 아녜스의 무덤 위에는 현재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져 있다. 이곳 수녀들은 해마다 두 마리의 어린 양을 키워 그 털을 고황에게 바치는데, 이 털로 팔리움(교황, 대주교, 주교가 미사용 제의 위에 걸치는 예식용 어깨 장식 띠)을 만든다고 한다. 동정녀의 수호성인으로 축일은 1월 21일이다.
 
[경향잡지, 2006년 1월호]

 

 

[이달의 성인] 성녀 아녜스(292-304)
 
윤 클레멘트 신부
 
 
동정녀이고 순교자이며 ‘어린양’이란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녀는 부유하고 귀족인 한 로마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아름다운 아녜스에게 많은 구혼자들이 나타나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거절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는 천상의 정배(定配)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우상의 신들 앞에 불려나와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우상 신들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거부하자, 집정관이 베스타 신전(神殿)에서 봉사하는 신전 정녀(貞女)가 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집정관은 그녀의 옷을 벗기어 그녀를 창녀촌으로 보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의 긴 머리가 빨리 자라나 그녀의 벗은 몸을 가려주고 그녀를 보호했다고 한다.
 
한번은 집정관의 아들이 그녀를 폭행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집정관은 아들은 눈 먼 장님이 되고 만다. 그때 그녀는 기도를 하여서 그 아들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마침내 그녀에게 화형(火刑)의 선고가 내려진다. 어느 자료에서는 그녀는 목 베임을 순교를 했다고 전하여진다. 이윽고 그녀는 도미티안 스타디움으로 불려나오고, 순결한 그녀의 몸과 영혼을 정배이신 그리스도께로 바친다. 그 도미티안 스타디움(Stadium of Domitian)이 지금의 노바나 광장(Piazza Novana)인데, 오늘날 그곳에는 성녀 아녜스 성당이 있다.
 
그녀에 대하여 전해지는 자료나 이야기들은 전설이 아니다. 많은 입증할만한 자료들이 있다. 순교 후 머지않아 그녀는 칭송받기 시작했다. 4세기 말에 교황 다마소 1세가 그녀의 묘비에 비문을 썼는데, 그것이 1792년의 발굴 때에 드러나기도 하였다. 교황 다마소 1세의 비서를 3년간이나 역임했던 성 예로니모(340-420)는 그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성녀 아녜스는 문학, 사람들의 연설, 특별히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데, 그녀는 나이와 폭군을 둘 다 이기어 냈으며, 아울러 자신을 순결한 순교자로 하느님께 봉헌했기 때문이다.”
 
한편 성 암브로시오(340-397)는 그녀의 덕행과 순교에 대하여 강론을 하기도 했고, 그녀에 대한 칭송의 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녀는 특히 중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이 칭송되었는데, 교회의 많은 성녀들 즉 성녀 발바라, 도로테아, 안티오키아의 마르가리따 등과 같이 한 신화처럼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덕행과 동정의 순결성으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바친 교회의 동정녀들이다.
 
그녀의 몸과 머리로 추정되는 유해가 1901년과 그 이듬해에 각각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머물러 계속되는 상징과 칭송의 강력한 초점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순교할 당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칼로 나의 몸을 피로 물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께 바친 나를 결코 더럽게 할 수는 없다.”
 
[2010년 1월 17일 연중 제2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성인들의 발자취] 성녀 아네스

갖은 위협에도 굽히지 않고 신앙지켜, 12살 어린나이에 순교 - 축일은 1월 21일



아네스 성녀가 로마의 미네르바 신전에서 배교의 표시로 우상의 향을 피우도록 명령받은 것은 그녀 나이 불과 12세 때였다. 그녀는 이러한 명령을 듣고는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들어 십자가의 표시를 했다.

가냘프고 어린 그녀의 손과 발에 쇠고랑이 채워진 채 고통받고 있었지만 굽히지 않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주위에 있던 이교도 중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녀가 굽히지 않는 것을 본 재판관은 이번에는 이교도 군중 앞에서 그녀의 옷을 벗게 했다. 정결하고 신앙심 굳은 그녀는 『그리스도는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어린이 같이 순진하고 정결한 모습을 한 그녀를 응시하는 순간 섬광이 비춰 눈이 멀었다고 한다.

갖가지 위협적 방법을 동원했지만 실패한 재판관은 마지막으로 결혼신청 등 감언이설로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 평생 동정을 지키고 일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한 아네스는 『그리스도는 나의 배우자』라고 대답,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에 끌려간 그녀는 똑바로 서서 기도 드린 후 휘두르는 형리의 칼에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 같은 생명을 하느님께 바쳐 순교했다.

오늘날의 젊은 여성에게 아녜스의 굳은 신앙심과 아울러 정결과 결백한 마음은 모범이 되고 있다. 성녀 아네스 동정 순교자의 축일은 1월 2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