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사들의 주방(1646)
작가: 바르톨로메오 뮤릴로 (1617- 1682)
크기: 켄버스 유채 : 180X 450cm
소재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종교가 줄 수 있는 매력과 감동은 결코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론 제시만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기적이야기나 평범한 삶에서의 신앙 실천이 보이는 감동인데,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예나 오늘이나 민간 차원에서 감동을 주고 있는 어떤 수도자에 대한 일화를 그린 것이다.
한마디로 눈으로 들을 수 있는 감동적인 신앙의 훈훈함이다.
작가는 당시 스페인의 큰 도시였던 세빌리아에서 태어나 일생을 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기에 종교 작품이 많으며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각별한 관계를 가지면서 프란치스칸 성인들에 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작품은 당시 그 도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살면서 감동적인 일화를 많이 남겼던 어떤 수도자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세빌리아 시 근처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프란치스코 페레즈라는 수사가 있었는데 그는 큰 수도원을 주방 보조를 맡고 있는 수사였다.
그는 겸손과 단순함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프란치스칸 수사답게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어서 자기에게 맡겨진 주방 일과 기도에만 몰두하면서 살아가는 경건한 수사였다.
어떤 때 그의 단순한 행동 때문에 어떤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기도 했으나 그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는 법이 없이 오로지 자기 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 수사가 남긴 여러 일화 중에 하나로 그가 평범한 주방 일을 통해 보여줬던 놀라운 성덕의 모습을 전하는 것이다
그는 주방이라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을 형제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에 조금도 불평이 없이 너무도 만족하면서 살아왔으나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주방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그의 일과는 성당과 주방을 왕복하는 것이었고 주방 일이 없는 시간은 거의 성당에서 기도로 보내면서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감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서 시간을 잊고 기도에 몰두하면서 천상의 성인들과 함께 하는 황홀함에 빠져 들었다.
그는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기쁨에 모든 것을 잊고 황홀한 영적 감동에 빠져 있다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 주방 근무 시간이 훨씬 지냈다는 것을 알고 놀라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전에도 종종 이런 일이 있어 수도 가족들에게 불편을 준 적이 있었는데 이날도 큰 실수를 하게 되었다.
장상으로부터 들어야 할 꾸지람을 생각하며 황급히 부엌으로 돌아온 그 앞에는 놀라운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 작품은 바로 그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식사 준비 시간이 한참 지났기에 너무도 당황하여 겁먹은 표정으로 주방문을 열었을 때 주방에는 일군의 천사들이 자기를 대신해서 주방 일을 하고 있는 놀라운 모습을 그는 보게 되었다.
힘센 천사들은 물동이를 들고 물을 나르고 또 다른 일군의 천사들은 음식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기 천사들까지 동원되어 양념을 준비하노라 앙징스러운 손으로 분주히 양념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 수사가 염려했던 모든 것들이 천사들의 도움으로 조금도 차질이 없이 완벽히 해결된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자연적인 표현을 통해 영적 세계의 아름다움으로 인도하고 있다. 천사들이 영적인 존재이면서도 주방에서 인간들이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구리 그릇, 도자기 물주전자를 들고 나르거나 식탁 정리 , 양념 만들기 등 , 주방에서 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소재를 통해 천상식탁의 아름다움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탈혼 장면 외에는 너무도 평범한 주방의 모습이며 그기에 나타나고 있는 주방 용구들은 하나같이 정물화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천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그 안쪽에는 그와 함께 일하던 수사가 놀란 모습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자기 동료가 기도에 빠져 늦게 오는 것을 알고 혼자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황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천사들의 무리를 보면서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안배를 체험하면서 놀라움 속에서 황홀한 표정으로 천사들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식사가 늦어 큰 낭패라는 두려움으로 주방에 들어온 수사는 하느님의 안배에 의해 모든 것이 천사들의 도움으로 잘 되는 것을 보는 순간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마음에 몸의 중력을 잃고 공중에 뜨게 된다.
중세 성인들 중 공중부상을 했던 성인들이 종종 있는데 , 이 수사 역시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너무도 깊이 심취했기에 지상적인 모든 것에서 해방된 사람의 상징으로서 공중을 날고 있다.
그의 소박한 프란치스코 수도복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머리 주위엔 너무도 밝은 황금빛 후광이 감싸고 있다.
그는 비록 육신적으로는 지상을 살고 있으나 그가 기도를 통해 만나는 것은 항상 천상의 하느님이시었기에 이제 잠시나마 그의 육신은 지상에서 해방되어 천상적 존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비신학에서 지복지관 , 인간이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경지를 말하는데 이 수사는 바로 이런 경지에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공중부상의 상태에서 온몸은 하느님의 광채로 쌓여 있다.
인간적으로 보기엔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칠칠하게 보이는 이 수사가 실은 하느님 나라에선 너무도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후광은 전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 세 명을 데리고 타볼산으로 가셔서 자신의 모습을 빛처럼 밝은 모습으로 변모시킴으로서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였던 예수님의 현성용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문으로 고귀한 신분을 연상시키는 두 명의 신사와 수도원장이 문 곁에서 이 감격스런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도 평소 이 수사의 성덕에 대한 것을 많이 들었으나 별로 믿지 않았고 오히려 이 수사가 기도를 핑계로 수도원의 규칙을 자주 어기는 사고뭉치 수사라는 정도의 소문을 들어오던 처지였다
그러나 탈혼한 이 수사를 보면서 그들의 자기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임을 깨달으면서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세 사람의 표정들은 마르코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이방인인 백부장을 통해 "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셨다"(마르코 : 16: 39)라는 신앙고백이 나오는 것을 연상시킨다.
오늘도 어떤 신학적으로 대단한 내용의 글이나 강론 못지않게 성모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기적 이야기나 경건한 사목자나 수도자의 일화가 사람들에게 신앙으로 인도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 가운데 순회의 삶을 살아가는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의 일화는 듣는 사람들을 훈훈하게 만들어 신앙의 멋스러움으로 인도해 왔는데, 오늘도 이런 전통은 프란치스칸 안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 주방 수사의 복음으로 영글어진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그 자체로 힘찬 복음 선포였으며 이 작품은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평범한 수사의 삶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개입하셔서 기적으로 보여 주신다는 것을 이 작품은 전하고 있다.
기도에 몰두하노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못한 이 수사를 도와 모든 일이 다 잘 마무리되게 한 천사들의 모습은 수도자들이 주일 저녁기도로 바치는 다음 시편을 연상시킨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 행여 너 돌뿌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널 떠받고 가리라 (시편 9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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