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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별이 빛나는 밤에 / 반 고흐 ~

제목 : 별이 빛나는 밤에( 1890: Starry Night)

작가 : 반 고흐 (1853- 1890)크기 : 캔버스 유채 : 73.7 X 92.1cm)

소재지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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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유능한 화가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돈도 벌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이 작가의 삶은 이런 형태와 전혀 다른 모습의 "광기의 작가"로 치부된 삶을 살았다.

 

작가는 화란의 명망 있는 중산층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으나 그의 인생은 계속적인 실패로 이어지는 삶이었다.

무엇을 하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성을 도우는 마음으로 구애를 해도 다 퇴짜를 맞아야 했다.

이런 와중에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기로 하고,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처럼 가장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탄광의 광부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의 목회 생활은 교구 위원회로 부터 전통 신앙과 거리가 먼 가르침을 전한다는 이유로 면직을 당했다.

복음의 순수함을 살고자 하는 그에게 제도적 교회의 현실은 위선적이고 냉혹했다.

크리스챤들의 만고불변의 고전인 준주성범의 정신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그를 제도교회는 주변과 타협하지 못하는 부적당한 목회자로 치부하는 것을 보면서,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들은 자신들이 실천도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위선자라는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는 박제된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선 종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위선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선을 버리기 위해선 위선자들이 대접받을 수 있는 교회를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를 연상시킬 만큼 극도의 가난을 살면서도 해바라기 같은 너무도 평범한 피조물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손길을 뜨겁게 느꼈기에 그의 이미지는 구겨지고 비참한 그의 삶과는 전혀 반대인 해바라기의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는 신학과 설교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목회자에서, 예술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화가의 길을 통한 신앙여정을 새로 시작했다.

 

이 작품은 생애 마지막 1,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 작품이다

배경은 그가 입원했던 철창이 쳐진 정신과 병원 창문으로 바라본 마을의 밤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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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색조가 어두운 것이면서도 그 들끓는 에너지로 소용돌이치는 이 그림에서 달이 태양처럼 불타고 있으며 하늘에는 폭발할 듯한 노란 별들이 가득하다.

감청색이 주제인 밤하늘이 마치 그가 많이 그린 노란색의 해바라기처럼 불같은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모든 것이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태에서 강한 생명을 폭발시키고 있다.

그 앞에 거대한 삼나무가 불꽃 모양으로 하늘의 천체들이 보이고 있는 강한 생명력에 동참하고 있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을 전하는 교회는 하나의 건물로 나타나있을 뿐 어떤 생명을 품은 동적인 모습이 전혀 없는 불꺼진 집의 모습인데 , 이것은 작가가 제도적 교회 성직자들로부터 받은 실망과 부정적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삼나무로 표현되는 자연은 하느님의 현존을 너무도 생기있게 표현하는 반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바친다는 교회는 하느님의 부재를 서글프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목회를 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예수의 삶에 깊은 공감대를 확인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따돌리며 몰이해와 오해를 보인 교회를 그는 성서에 나타나는 회칠한 무덤이란 말로 고발했듯이, 여기에 나타나는 크리스챤이 살고 있는 마을과 교회 역시 그의 이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밤하늘의 달과 별 ,삼나무를 통해 자연이 발산하고 있는 거대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보랏빛에 가까운 짙은 색의 하늘과 거친 화폭은 그가 생각하는 크리스챤적인 인생 여정 즉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르는크리스챤 삶을 본질인 영원을 향한 순례를 상징하면서 작가는 이 삼나무를 태양의 상징인 해바라기와 연결시키고 있다.

 

성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는 주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비범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더 없이 고요한 하늘이 품어내는 이 강렬한 생기에서 그는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을 느꼈기에 그는 하느님을 그리는 마음으로 이것을 표현했다.

작가는 짙은 어둠이 덮힌 하늘에 있는 달과 이글거리는 모습의 삼나무를 통해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간의 삶에 들어와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표현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마태오 28: 20)

 

밤은 낮의 동적인 성격과 달리 정적인 것의 상징이며, 생명과 달리 죽음의 상징이나 작가는 이 작품에 나타나는 밤을 통해 하느님의 변함없는 현존의 생명을 표현한 것은 성서적 삶을 깊이 체험한 그의 신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는 낮의 상징인 태양을 달과 함께 그렸는데, 이것은 교회 전례 안에서 저녁시간이 주는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크리스챤에 있어서 저녁시간은 하느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할 수 있는 복된 황혼이며 신비체험의 시간인데, 작가는 여기에서 밤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강한 생명감을 표현하고 있다.

 

.일생 동안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도와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나는 종교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갈망과 욕구를 가지고 있어 그런 밤이면 나는 별을 그리러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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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은 성서의 인물이나 성인들의 삶이 주제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이 작품을 성화로 여기는 것은 생경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성미술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반대하고 현대적인 의미로 성미술을 해석하고 작품을 남겼다.

 

그는 성서의 세계에 대해 조그만 의문도 품지 않았으나 현대인이 성서의 세계와 현대가 끊임없는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위선이라 생각했다.

 

그는 예수의 모습을 그리기 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그리는데 더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전통적인 성미술에 대한 태도에서 벗어나 예술 자체를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으로 생각했다.

 

그는 세상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세상적인 자연을 소재로 그린 이 작품이 온전히 종교적으로 다가오며 여기에 영원을 향한 무한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실패와 몰이해의 연속이었던 그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나온 것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생애를 전체를 통해 해바라기의 상징으로 표현했던 최고의 빛과 생명을 표현하고 있다.

 

광인처럼 보이는 그의 삶 안에 더 없이 순수하고 진지한 삶을 살고픈 수도승과 이것을 표현하고픈 화가가 공존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향한 그의 갈망을 정확히 표현해서 감동을 주고 있다.

실패와 오해로 점철된 그의 생애는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다음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런데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마르코 3:21)

 

  철저한 몰이해와 오해로 이어진 작가 생전에 그의 작품은 단 2장밖에 팔리지 않았고, 이것도 빚 담보로 저당 잡힌 것이었으니 가격이라 볼 수 없는 헐값에 팔렸다.

 

오늘날 그의 그림은 천정부지의 가격으로 오르고 있는데 년 전 그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 도와준 의사를 그린 초상화 한 점이 일본인 수집상에게 우리 돈으로 1300억에 팔렸다.

 

이것은 작가의 진가가 인정받았다는 면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종교인들조차도 세상 분위기에 편승해서 위선이 깃든 형식적인 삶을 부담없이 살아가는 현실의 현대인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정신병자 같은 생애에서 남긴 작품을 통해 여러 장애와 유혹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살고자 노력하는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했다는 면에서 그는 현대 차원에서 탁월한 성미술 작가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