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집회 4,11-19
11 지혜는 자신의 아들들을 키워 주고, 자신을 찾는 이들을 보살펴 준다. 12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13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으리니,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14 지혜를 받드는 이들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고,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신다. 15 지혜에 순종하는 이는 민족들을 다스리고, 지혜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안전하게 살리라. 16 그가 지혜를 신뢰하면 지혜를 상속받고, 그의 후손들도 지혜를 얻으리라. 17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18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19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
복음 마르 9,38-40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강도나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 죄인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창녀는 어떨까요?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으니 죄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그러면 안식일을 어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계명이 있어서 죄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것이지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거든요. 즉, 율법을 확대해석을 해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 짓고 있습니다. 여기에 병자들도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병이라는 고통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또한 로마의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던 로마 화폐를 만질 수밖에 없었던 세리들 역시 우상숭배에 빠진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지요.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죄인이라고 결론을 맺는 이유는 하느님을 통치자 하느님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완벽하신 하느님의 시선으로 볼 때,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하느님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비의 하느님,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과거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취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모습들, 나와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반대하며 거부하는 모습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잣대만을 내세워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모습들 등등... 우리들이 과거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사실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 역시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 보면 자기들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막으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막지 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그렇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의 모습을 쫓아서 내 편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커다란 이해와 사랑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습, 사랑과 용서의 모습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습이 진정으로 주님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자갈이나 모래를 먼저 집어넣으면 큰 돌은 결코 넣을 수 없습니다. 삶 속의 큰 돌, 즉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세요. 그것을 우선적으로 마음의 항아리에 넣으세요(장영희).
주님은 아침의 모닝커피처럼 정신을 깨우시는 분입니다.
웃음
웃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웃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웃음으로, 입술 끝이 위로 당겨질 뿐 아니라 두 눈이 약간 모아지면서 눈가에 주름이 나타나고 두 뺨의 상반부가 들려진다고 하지요. 이 웃음을 심리학자 기욥 뒤센이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뒤센 웃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웃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가짜 웃음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짓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드는 웃음이지요.
이 두 종류의 웃음에 대해 버클리대학교의 켈트너와 하커 교수가 1960년 밀스대학의 졸업생 1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가 있습니다. 졸업앨범에서 3명을 제외한 모든 여학생이 웃고 있었는데, 그 중에 진짜 웃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뒤센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은 절반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학생들의 결혼과 생활 만족도를 조사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뒤센 웃음’을 짓고 있던 여학생들은 대개 30년 동안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건강상태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는 곧 진짜 웃음을 짓는 사람이 행복할 결혼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지금 나의 웃음은 어떤 웃음일까요? 사는 것이 힘들어서 웃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기억한다면, 또한 매순간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느님과 함께 하려 한다면 분명 ‘뒤센 웃음’을 지을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 ‘뒤센 웃음’을 지으면서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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