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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3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제1독서 토빗 6,10-11; 7,1.9-17; 8,4-9ㄱ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 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라구엘은 “형제들, 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 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9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 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 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얘야, 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 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 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그리고 얘야, 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 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 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8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복음 마르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어떤 강의실에 가짜 학생 두 명이 출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가짜 학생들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그 누구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출석만 하고, 강의가 끝나면 조용히 사라질 뿐이었지요. 그런데 한 학생은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을 했고, 다른 학생은 가끔 출석을 했습니다.

이제 학기말이 되어서 이 강의실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이 가짜 학생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강의실에 가끔 나타났던 가짜 학생과 매일 강의에 출석했던 가짜 학생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두 학생에 대한 호감도를 물었습니다. 과연 누가 더 높은 호감도를 얻었을까요?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았고, 또 신체적인 접촉도 없었지만 더 많이 본 매일 강의실에 나타났던 학생에게 더 높은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단순노출효과’라고 하더군요. 즉, 아무런 접촉이 없어도 가까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친구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매주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성당에 가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데, 그냥 시간 때우기 식의 미사 참석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나의 호감도를 높이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내세워서 커다란 의미를 간과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일에 성당 가는 것이 짜증난다고 말합니다. 미사는 왜 이렇게 긴지, 강론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신앙생활을 접고 싶다고, 그리고 나중에 마음이 움직일 때 성당에 다니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이유로 성당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내세운 이유들은 성당 가기 싫은 핑계만을 나열하는 것뿐이지요. 성당을 가는 중요한 이유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욱 더 가까운 관계,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성당 가는 것을 거부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사랑의 계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사랑으로 우리와의 친밀도를 높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노력은 어떠했을까요?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고는 있을까요? 이것 역시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하겠다면서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과의 호감도,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요....

‘말’을 늘려서 발음하면 ‘마알’이 됩니다. 이를 풀이하면 ‘마음의 알갱이’란 뜻입니다. 말은 마음의 알갱이에서 나옵니다(윤태익).


어제는 인천교구장님이신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님의 축일이셨습니다.


항상 좋은 일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휴가 기간이 보름이라면, 어떻게 휴가를 보내는 것이 가장 즐거울까요? 보름을 한꺼번에 아니면 2~3일씩 몇 차례에 걸쳐서 휴가를 보내는 것. 둘 중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휴가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정답은 몇 차례씩 나눠서 휴가를 보낼 때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하네요. 길게 휴가를 가면, 처음에는 즐거울지 모르지만 습관화가 내 안에 이루어져 시간이 갈수록 지루해진다는 것입니다. 습관화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즐겁고 신나는 일도 지루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의 삶 안에서 항상 좋은 일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행복한 일, 기분 좋은 일이 계속되지 않지요. 때로는 어렵고 힘든 고통과 시련의 순간들도 내 곁에 다가옵니다. 그 이유가 습관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가 아닐까요? 즉, 좋은 일, 행복한 순간이 계속되면 습관화가 이루어져서 지루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배려를 다시금 묵상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