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2코린 6,1-10
형제 여러분,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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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다보면 종종 ‘언제 여기까지 왔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어떤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 목적지만을 생각하고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목적지 없이 자전거 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서 달리다보면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꽤 먼 곳에 도달해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별로 힘도 든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역시 어떤 목적지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과정 안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이를 단순히 안 좋은 결과에 대한 위로의 말로 하는 경우가 더 많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결과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 자체에만 의미를 두면서 그 과정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아니, 결과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정, 특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랑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을 것을 명하십니다. 그래서 오른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합니다. 또한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는 사람에게 이천 걸음을 가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만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또 내게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만 선을 행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그 결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는 사랑의 과정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세상에 악을 없애고 선을 널리 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악의 고리는 또 다른 악을 만들어서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으면 결국 악이 사라지고 선만이 남게 됩니다.
40년 동안 친한 친구인 두 형제님이 계셨지요. 이 둘은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형제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40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지? 우리도 한 번 싸워볼까? 그래야 싸우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냐?”
그래서 둘은 싸우기로 합의했습니다. 싸움의 시작은 둘 사이에 놓여 있는 빵이었지요. 이 빵을 한 형제님이 얼른 가지면서 “이 빵은 내꺼야. 너는 먹지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님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그래. 너 먹어.”
만약 “아냐, 왜 네 빵이야? 내 빵이라고!”라고 우겼다면 어떠했을까요? 분명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너 먹어.”라고 악을 선으로 갚으니 모든 상황이 끝나는 것입니다.
결과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사랑의 과정을 항상 염두에 두어서 생활하십시오. 이 과정을 통해 주님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열망이 우리의 가능성이다(새무얼 존슨).
오늘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멋진 과정의 날을 만드세요.
나의 길은?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다가 그만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배를 지금 세우기에는 시간이 없었지요. 얼른 강을 건너가서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 물건을 찾을 생각으로 얼른 뱃전에 자국을 내어 물건이 떨어진 지점을 표시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면 과연 자신의 물건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뱃전에 자국을 내었으니 물건이 떨어진 지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찾는 방법은 물건이 떨어졌을 때 그곳에 곧바로 뛰어 들어갔을 때만 가능합니다. 나중에 찾겠다고 엉뚱한 뱃전에 자국을 낸들 어떻게 찾겠습니까?
우리 역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즉,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면서 현재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헛되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쉬운 방법만을 찾으려는 게으른 마음, 나중에 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 지금만 어떻게든 지나가면 된다는 임시방편식의 해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가장 좋은 길, 가장 행복한 길로 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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