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연중 제 13주간 - 저의미한 단식 ~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어제는 창문을 열면서 “오늘도 비가 오네.”라고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 “오늘도 하느님께서 비를 주시네.”라고 하지 않는 제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의 생각이 이어지는 여러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비는 비대로 오고,

하느님은 하느님대로 계시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우리가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가?!

 

실상 대부분의 비는 저와 무관하게 왔습니다.

그런데 비는 진정 나와 무관한 자연현상이고,

하느님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연현상인가?

 

설령 비가 나를 위해 오는 게 아닐지라도 나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설령 비는 나를 위해 오지 않더라도 내가 바라보면 비는 나를 위해 오고,

내가 빗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젖을 때 비는 나를 위해 오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은총을 비처럼 느끼면 하느님은 빗줄기를 타고 내게 오시지 않는가?

 

오늘 단식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하느님이 빠진 단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허다한지 돌아봅니다.

 

저의미底意味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많은 단식은 저의미합니다.아니, 하느님 빠진 단식은 저의미를 넘어 무의미하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이 빠진 단식은 신랑의 잔치에 가서

신랑은 보지 않고 음식만 먹고 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신랑 없이 먹는 거나 신랑 없이 굶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지요.

 

하느님이 없는 세상이 세속이듯

하느님이 없는 단식도 세속적인 것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함이 없는 단식은 그래서 너무도 아쉽고 심지어 허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