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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3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창세 28,10-22ㄱ

그 무렵 10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14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17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19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즈였다.
20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복음 마태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저는 매일 아침에 운동을 합니다. 날씨만 좋다면 2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있으며, 돌아온 뒤에는 제 방에서 30분 정도의 헬스를 하고 있지요. 따라서 2시간 30분씩 매일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낮기도를 위해 성당에 들어가서 묵상을 하다가 부끄러운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위해서는 2시간 30분씩 매일 운동을 하는데,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침기도와 묵상 1시간, 낮기도 20분, 저녁기도와 묵상 1시간, 그리고 미사 30분.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고작 2시간 30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시간도 바쁠 때에는 줄여나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쓰는 시간은 빼놓지 않으면서, 어 중요한 내 영혼의 건강을 위해 쓰는 시간을 소홀히 하는 모습에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하십니다. 아직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 일들을 모두 마친 다음에 기도할 수 있을 듯이 이야기하십니다. 세상 일이 녹녹치 않아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분명히 기도 시간을 더 늘릴 것이고 또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우선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더 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소홀히 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만지지요.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혈루증이란 당시에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병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엄청난 손가락질을 당했을 것이고,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병을 앓은 지가 자그마치 열두 해입니다. 그동안 병의 치료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좋다는 약을 다 썼을 것이고,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지 않고 열두 해를 보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의심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용하다는 의원도 나를 고치지 못했는데, 과연 저 예수라는 사람이 내 병을 치유해 줄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오히려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씀을 듣고, 실제로 병의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믿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굳게 믿는 것이 바로 구원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내 자신의 믿음을 다시금 점검하는 오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늘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맞게 잘 조율된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김선희).


지난 7월 5일 사제서품 받으신 새 신부님의 첫미사 시작 전.


등을 보는 사랑(윤준현, ‘행복한 동행’ 중에서)

오늘은 한 잡지에 기고가 된 글을 그대로 올려 봅니다. 내가 바뀌어야 편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고 반성해 봅시다.

20대에 시작한 직장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상사들 비위 맞추면서 살지 않겠어!”하고 외치며 툭하면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마지막 직장을 나올 땐, 문득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왜 난 그렇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삼십 대 후반이 된 때였다. 안정적이고 보람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일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사회 복지사에 도전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못다 한 효도가 늘 가슴에 남아 있었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는 양로원에 취직했다. 일은 보람되었지만 비슷한 상황이 오고 말았다. 상사에게 지적당하자 불만이 쌓였다. 그날도 사표 쓸까 하는 생각에 인상을 쓰고 다녔다. 그러자 나를 아끼던 한 어르신이 조용히 불렀다. “무슨 일이기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가?” 상사 흉을 실컷 보자 어르신이 말문을 열었다.

“남들이 지적하면 일단 받아들이게. 등의 때를 혼자 밀 수 없잖아? 우린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네. 다른 사람 눈에 비춰지는 게 진정한 내 모습이야.

” 어르신은 이어서 말했다.

“어떤 직장을 가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절대 그곳을 바꿀 수 없네.”

그 말에,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얕보던 습관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조금씩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어느새 양로원에서 일한 지 4년이 되어 간다. 지금은 어르신들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