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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대림 1 주간 수요일 - 사랑으로 채우신 일주일 을 굶기심 ~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지금까지 저는 빵의 기적을 굶주린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빵의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있어서 주연이신 예수님과

조연인 제자들의 입장에서만 봐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많은 사람이 굶주렸다고 하는데

제가 그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어 한 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때 사실 저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다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저는 빵 때문에 예수님께 다가간 것은 아닙니다.

고픈 배 채우는 것 못지않게

지친 마음을 추스르도록 힘주시는 말씀이 필요해서 갔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나 그저 들어보러 예수님께 간 것인데

제가 몇날 며칠을 그렇게 깊이 그분 말씀에 빠져들 줄은 몰랐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니고 있던 약간의 빵마저 떨어져 굶주리게 되었지요.

 

 

그분이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한 두 끼가 아니라 무려 사흘이나 굶었을 때 말입니다.

 

 

그때는 왜 진작 빵을 먹이시지 않고 며칠을 굶기셨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빵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배부른 체험을 하고,

빵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갈구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많은 가르침으로 충분히 만족한 상태였을 때

그래서 배고픈 것도 괘념치 않고 말씀에 빠져있었을 때

그분은 말씀을 중단하시고 제자들에게 빵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먹일 빵은 없고 조달할 방법도 없다고 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였지만 빵 얘기가 시장기를 돌게 했는지

예수님마저도 먹이겠다는 것을 포기하실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포기하러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아니”라고 얘기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인간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려면 뭣 하러 오셨겠습니까?

채워주지도 못할 분이시라면 뭣 하러 인간이 되어 오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진정 채워주려 하신 것은 배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배가 너무 고파 배를 채워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분은 빵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빵은 다 소화되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그때 받은 사랑은 아직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사랑으로 채우시려 사흘을 굶기신 겁니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그분이 아직까지 제 안에 계십니다.

밀가루 빵처럼 금새 우리 몸에서 빠져나가실 거면

아예 생명의 빵이 되지도, 먹히지도 않으셨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천사의 양식은 우리 양식되고,

천상의 양식을 우리게 주시는 주님, 오늘 어서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