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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뻐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

2013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

제1독서 이사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제2독서 로마 15,4-9

형제 여러분,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복음 마태 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언젠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대형 마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워낙 큰 매장이다보니 그 물건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지를 잘 모르겠더군요. 한참을 물건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서 제 근처에서 바쁘게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마트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요. 혹시 이 물건이 어디에 있을까요?”

바쁘게 일하고 있었던 이 직원은 얼른 자신의 일을 멈추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뭐가 죄송한데요? 저희는 원래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라면서 저를 끌고 물건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죄송하다고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죄송한 마음을 간직하고 말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습관적으로만 ‘죄송한데요.’라고 말했던 것뿐이었지요.

아무튼 마트 직원은 제게 장난삼아 그렇게 말했지만,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만 또 입으로만 사과를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회개에 대해서도 이처럼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것은 아닐까요? 즉, 말로만 뉘우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전혀 뉘우치지 않는 위선자의 모습은 아닐까요?

대림시기에 우리들은 다가올 성탄을 준비하면서 고해성사를 봅니다. 그런데 이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아쉬운 분들은 그냥 형식적으로만 죄 고백을 하시는 분입니다. 스스로의 깊은 성찰 없이 몇 가지 죄만을 쭉 나열한 뒤에 스스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앞서 마트에서 그냥 형식적으로 말하는 ‘죄송한데요.’라는 말과 다를 바가 과연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이러한 형식적인 뉘우침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차 있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하고 있지요.

여기서 독사의 습성을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독사는 사람을 문 뒤에 곧바로 물로 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물을 찾지 못하면 죽게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점을 비유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즉, 물의 힘으로 죽음의 위험을 벗어나려는 독사처럼 죄를 짓고서는 부리나케 세례 받으러 왔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모습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회개 없이 고해성사만 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도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꾸짖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뉘우침이 아닌,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는 이번 대림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회개만이 가까이 다가온 하늘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눈을 떼면 그 밖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빅터 프랭클).


마지막까지도 '시신기증'이라는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의 장례미사가 있었던 주안1동성당.


후회 없는 삶이란?

어제 친구 아버님의 장례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오랫동안 병중에 계시면서 많이 힘드셨는데, 그 모든 힘든 수고를 뒤로 하고 주님 곁으로 가셨지요.

사실 아버님은 정말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장례 미사 전날에 조문을 하러 갔었는데 장례식장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신 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신 것도 아니지요. 단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셨던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자신의 시신까지도 기증하면서 마지막 돌아가는 순간까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지요.

아버님의 죽음 앞에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봤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울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고, 사람들은 울어주기를.”

웃으면서 이 세상을 떠나기를, 그리고 이렇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