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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성인의 꿈과희망

~ 사부님과 성탄절 ~

사부님과 성탄절

성 프란치스코는 축일 중에도 특히 아기 예수 탄생일을

제일 기뻐하였다.

주님의 성탄의 신심은 무엇보다도

첼라노가 쓴 성프란치스코의 제2생애에 잘 나타나고 있다.

(2첼151)

그날은 축일중의 축일이요, 그날에 하느님이 주먹만 한 아기가

되어 인간의 젖꼭지에 매달리셨다고 말하며,

성인은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어느 축일보다도 이루 말할수 없는

기쁨중에 보냈다.

아기 예수님의 그린 그림을 만나면, 그는 그리운 마음에 거기

손과 발에 입을 맞추었고, 아기 예수에 대한 측은함에 가슴이

뭉클해서 마치 아기들에게 하듯이 예쁜 말들을 더듬 거렸다.

아기 예수님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의 입에 꿀맛이었다.

마침 성탄일이 금요일이 된적이 있는데, 금육을 할지에

묻는 형제에게 이렇게 답변 하였다.

“형제여, 우리를 위하여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이날을

단식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날은 담벼락까지고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먹을수 없으니, 그곁에 다가 고기를 문지르라고

해야 합니다“ 이날에 프란치스코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기를 바랐고, 소나 당나귀에게도

평상시보다 더 많은 양의 여물을 주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 황제께 말만 할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밀과

곡식을 길에다 뿌려 새들도 이렇게 성대한 날은 실컷

먹게 하고, 특히 나의 자매인 종달새들이 실컷 먹을수 있

도록 하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날에 가난하신 동정녀께서는 그 궁핍함이 얼마나 컸을까

싶어 프란치스코는 눈물을 지으며 회상에 잠기곤 하였다.

그가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 형제가 복되신 동정녀의

가난과 그 아들 그리스도의 빈곤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곧

프란치스코는 식탁에서 일어나 맨바닥에 주저앉아 한숨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나머지 빵을 먹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여왕이신 성모님

안에서 현현하게 빛을 발한 이 가난의 덕을 왕의 덕

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사부님의 영광스런 죽음이 있기 3년전, 작은 마을 그렉치오에서

그리스도의 성탄날에 경건하게 기억을 되새길 필요를 느꼈던

성인은 아기 예수가 탄생했던 베들레헴 구유를 그대로 재현 시켜

1223년 12월 25일 미사를 거행했다.

그는 낭랑한 목소리로 설교를 하여,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최고의 보상을 받게 했다.(1첼30장)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구유를

꾸미는 풍습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