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R) - 마태11,11-15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삽과 포크레인>
회의 차 로마에 잠시 머무를 때의 일입니다. 반나절 정도의 휴식시간이 있어 몇 군데 성당을 둘러보려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당연히 첫 번째로 선택한 성당은 바티칸 대성당이었지요. 그러나 웬걸, 주일이어서 그런지 바티칸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입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에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긴 꼬리에 붙었다가 적어도 3시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바티칸에서 좀 떨어진 다른 성당들을 몇 군데 순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바티칸 대성당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단한 성당들이었습니다. 어디 가나 비슷비슷했습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당 좌우편 여기저기에는 나름 의미가 있는 작은 제단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벽이나 천장에는 유명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작품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렇게 서 너 시간을 돌아보고 나서 드디어 해질 무렵 발걸음을 바티칸 대성당으로 옮겼습니다. 다행이 그 많던 인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신속히 대성당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같이 갔던 일행들의 입은 ‘짝’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봐왔던 성당들도 대단했지만, 성당의 규모와 건축미, 내부의 예술성, 화려함 등은 바티칸 대성당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바티칸 대성당은 최대 6만 명 이상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네요. 성당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 넘는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중앙 제대 외에 여기 저기 44개의 제대와 10개의 돔이 있습니다. 1300개가 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일반 성당과 바티칸 대성당을 비교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삽과 포크레인을 비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살다보면 유사한 케이스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보름달, 그 광채와 아름다움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새벽이 오고 동녘이 밝아오면서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달은 순식간에 그 빛을 잃고 맙니다. 한마디로 태양 앞에 달은 ‘깨갱’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그가 특별했으면 예수님조차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은 탁월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시대를 종결짓는 마지막 대 예언자로서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종래의 유다 지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갖은 권모술수와 잔머리 싸움이 오고가는 기존의 지도자들과 선을 긋기 위해 세례자 요한은 극단적 청빈생활을 추구했습니다. 깊은 광야에 거처를 마련했고 기름진 음식과 안락한 생활을 거부했습니다. 오랜 수행과 기도생활로 내면을 다스렸습니다.
때가 이르러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한 세례자 요한이 입을 열자마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습니다. 그가 선포하는 설교에는 종래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힘과 맛과 깊이가 있었습니다. 때로 청천벽력 같고 때로 흐르는 강물 같은 그의 설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요르단 강으로 내려와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그의 인품이 뛰어났으며 그의 영성이 깊었던지 사람들은 ‘이분이 혹시 오시기로 한 메시아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지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이어서 등장한 예수님에 비교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대단했지만 예수님이라는 큰 빛 앞에서는 순식간에 그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늘나라는 모든 곳이 구원과 생명의 빛으로 충만히 채워진 곳이기에 그 광채 앞에 모든 것이 빛을 잃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에 입국한 인간, 그곳에서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위엄, 새로운 광채가 생깁니다.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로 인해 부족한 인간들도 빛나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 하늘나라 시민, 하느님의 빛을 받은 천국의 영혼들의 위엄과 영광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별 것 아닌 사람이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위성,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셔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그분이 오심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였고, 그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끝입니다. 그분은 여러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종결자입니다. 서막이 아니라 절정입니다. 이정표가 아니라 길입니다. 구원의 예표가 아니라 구원 그 자체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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