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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4년 3월 2일 연중 제8주일

제1독서 이사 49,14-15

14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제2독서 1코린 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 마태 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어제는 강화에 있는 인천 신학교에서 직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성직선발예식과 착의식, 독서직, 시종직을 신학생들이 받았지요. 그런데 이 신학생들을 보면서 참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본당신부일 때, 막 신학교에 들어갔던 신학생이 벌써 부제품을 앞둔 대학원 2학년이 되어 시종직을 받았습니다. 또한 성소국장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신학교에 입학시켰던 학생들은 4학년이 되어 어제 독서직을 받았네요.

이렇게 빨리 가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더욱 더 바쁘게 살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목표가 과연 바쁘게 사는 것일까요? 사실 바쁨이라는 것은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소위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한가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걱정 역시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바빠서 걱정이고, 반대로 한가해지면 한가해서 불안하다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너도나도 다 바쁜 것 같습니다. 길거리를 봐도 서둘러 걷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바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을 벗어 버리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하루를 투자해서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바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산을 오를 수 있을까요? 온갖 종류의 걱정거리들을 저 멀리 두고 산에 올라야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또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간이 있어야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더 잘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언제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커다란 용기를 불어 넣어주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이 말씀에 앞서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라고 하시지요.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이 없어서 세상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찾고 또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갈 때, 전도서에 나와 있듯이 우리가 걱정하는 모든 세상 일 모두가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지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가 말씀하시듯,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이에 용기를 가지고 힘차게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걱정은 모두 잊고 말이지요.

감사하는 마음에는 생명력이 있다. 무럭무럭 자라기도 하고 때로는 결실을 맺기도 하니 말이다(퀴스 텐마허).


어제 인천신학교에서 직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여유 있는 삶

자전거를 탈 때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밟을수록 속도가 올라갑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페달을 밟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힘이 들어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페달을 밟지 않고 그냥 있어도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내리막에서는 굳이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저절로 앞으로 내려가니까요.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계속 가야한다면서 페달을 쉬지 않고 밟으면 금세 지치는 것처럼, 때로는 쉬기도 하고 때로는 즐기는 시간도 필요한 것입니다. 내리막에서도 페달을 밟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일만 해야 잘 사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유 있는 삶을 많은 이들이 꿈꾸고 있으며, 먼 훗날에 내가 누릴 시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 먼 훗날 꼬부랑 노인이 되어서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누리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요?

여유는 어떤 특별한 시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지고 누려야 할 시간입니다. 이러한 여유가 우리의 삶을 더욱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특히 주님과 나의 관계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