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다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친인척들과 자주 못 만나게 되다보니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잘 못하고 삽니다.
사촌, 오촌이면 정말 가까운 관계인데,
사촌 조카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오촌 아저씨가 그럭저럭 먹고는 사는지,
사는 게 힘겨운지, 도통 알지를 못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언젠가 명절 때 잠깐 집에 들렀을 때 생긴 작은 해프닝입니다.
명절이라고 누군가 인사차 찾아오셨는데,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니,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니 살짝 촌수가 먼 친척 형님이었습니다.
반가운 나머지 큰 목소리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형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 순간, 주변 분위기가 싸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님 얼굴도 꽤나 난감한 얼굴로 변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제게 살짝 귀띔을 해주셨습니다.
“야야, 형님이 아니라 아제다 아제!”
그 순간 얼마나 송구스럽고 창피하던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저씨뻘인 분께 형님이라고 했으니, 당사자가 얼마나 기분이 꿀꿀했겠습니까?
정말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저는 머리를 몇 번이고 조아리며 백배 사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필립보는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 육화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
필립보는 그분의 제자로 3년 가까이 동고동락했습니다.
매일 예수님과 함께 같은 식탁에 앉았습니다.
매일 이 고을 저 고을 함께 다니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징과 기적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매일 한 두 시간씩 예수님의 명강의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나는 그분의 아들이자 분신, 더 나아가 그분과 동일한 존재, 동격, 그분 자체이다.
하느님 아버지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신다.
결국 그분과 나는 완벽한 몸이자 하나이다.
나를 보았으면 하느님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러나 필립보가 예수님께 청하는 꼴을 한번 보십시오.
아주 가∼관입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토록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설명했건만,
한다는 말이, 뭐?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예수님 외에 더 이상 다른 진리, 더 이상 다른 신앙의 대상,
더 이상 다른 목표, 더 이상 다른 이정표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종결자 중의 종결자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오랜 구약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죄와 죽음의 나라는 문을 닫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나라가 개국되었습니다.
우리의 시선, 더 이상 다른 곳을 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구원과 천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을 / 양승국신부님 ~ (0) | 2014.05.05 |
---|---|
~ 사제동행 / 양승국 신부님 ~ (0) | 2014.05.04 |
~ 부활제2주간 금요일 / 양승국신부님 (0) | 2014.05.02 |
~ 위에서오시는분은 모든것 위에계신다/ 양승국신부님~ (0) | 2014.05.01 |
~ 한 없이 부드러운 하느님 / 양승국신부님 ~ (0) | 2014.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