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새남터 순교성지
용산구 한강로3가동에 있던 마을로서,
새남터 근처에 있던 마을로 한강에 그물질을 하고
살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국 천주 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의 해인
1984년 공사를 시작해 3년만에 완공한
순교 성지 새남터 기념 성당이다.
새남터는 조선초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되었고
일명 "노들" 또는 "사남기" 라고도 불리웠다.
중죄인의 처형장으로도 사용된 이곳은
사육신의 처형 장소이기도 하다.
1801년의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있을 때 많은 천주교인들이 여기서 처형당했는데,
이들 중에는 조선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안드레아),
최초로 한국에 들어왔던 신부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
최초로 한국에 들어왔던 주교인 프랑스의 앵베르 주교등
11명의 성직자와 현석문 외 많은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9분의 성인유해가 소성당 제대에 모셔져 있다.
서소문밖 네거리, 당고개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새남터는 1950년순교 기념지로 지정되고
1956년에는 여기에 "카톨릭 순교 성지"라는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1981년에는 한강본당에서 새남터 본당이 분리 독립했고
1987년에는 한국순교복자성직 수도회에서
한옥 양식으로 현재의 기념 성당을 건립해 봉헌했습니다.
2006년 9월 3일에는성당 지하주차장을 개조해
"새남터 기념관"을 새로 만들어
축복실로 거행하고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 0 1 4. 5. 1 7. 시 곡(枾 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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