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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

~ 충만한 삶 / 안셀름 그륀 ~

The Autumn

      충만한 삶

          대체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영원한 삶' 혹은 '충만한 삶'이라고 할 때 그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우리는 성공과 실패, 건강과 질병, 남들의 인정 또는 거절로만 우리 자신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비록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문제 자체인 것은 아니다. 반복하지만, 불안하다고 해서 우리가 불안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안에는 결코 빼앗기거나 훼손당하지 않는 특별한 보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삶'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영원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판단은 주요하지 않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이라는 크나큰 힘에 우리르 맡기면 되는 것이다. '충만한 삶'의 새로운 자유에 대해 말하는 성경의 비유들은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그것은 삶의 새로운 맛에 대한 이야기이다. 꽉 짜여진 규범에 갇혀, 돌 항아리처럼 거칠고, 맹맹한 물처럼 맛이 없어진 우리의 삶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가 된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과 인간의 결혼식처럼 될 수 있다. 많은 비유에서, 새로이 태어난다는 것, 자기 안에서 새로운 생기를 경험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충만한 삶이란 걱정과 문제로 인해 우리로부터 단절되었던 내적인 샘을 만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삶으로 가는 길은 약속의 땅으로, 우리가 완전히 우리 자신일 수 있는 땅으로, 하느님이 만드신 우리의 유일무이한 모습을 경험하는 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사막을 지나면서 우리가 정말로 누구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인간 이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삶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충만한 삶이란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내적인 샘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그들의 삶에서 제외시켜 놓아 보지 못하고, 마음의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아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눈을 열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만하게 산다'는 것은 투시, 즉 고유한 것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가 새로운 눈으로 내 안의 더러운 것을 보고 그것과 화해할 수 있다는 것까지 포함 한다. 우리는 충만한 삶으로 변화시키는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내가 새로운 눈으로 삶을 직관하면, 나는 일상의 진부함 속에서 삶을 만나고, 죽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그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는 사랑의 삶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언젠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 너는 죽지 않을 것이야'라고." 충만한 삶이란 다시 사랑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가 조건 없이 자신에게 몰두하고,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야 할 사랑에서 나오는 삶이다. 제한된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부함 그대로 인식하고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실망과 좌절, 실패와 더불어 실존의 새로운 질에, 바로 이 충만한 삶에 이르게 된다. 중요한 점은 살고 있다는 것, 아주 일상적인 날들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매일의 삶이 모두 소중하다. 그것이 건강한 치유의 길, 진정한 삶의 기술에 이르는 길이다.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