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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18주일 나해 - 만나의 새로운 선물 / 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18주일: 나해: 만나의 새로운 선물

오늘 복음에서도 지난 주일과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만나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체성사로써 만나의 새로운 선물에 대한 것이다. 요한 묵시록에도 이러한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다.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겠다.”(묵시 2,17)

제1독서: 탈출 16,2-4.12-15: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제1독서에서의 만나는 하느님의 선물이긴 하나, 그들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과 반항심 때문에 주시는 선물이다(탈출 16,2-3 참조). 그것은 자비의 행위라기보다 책벌의 행위이다.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해도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불충실성을 항상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만나의 기적은 모세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직접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탈출 16,4.12 참조) 모세는 만나를 보고 놀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에 대해 알려준다.(탈출 16,15 참조) 여기서 모세는 기적의 중개자일 뿐이다. 모세 역시 하느님의 선물을 받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이로써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가 어떤지를 보여 준다.(요한 6,32.35 참조)





복음: 요한 6,24-35: 나를 믿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의 빵의 기적과 연결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호수 건너편에서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25절) 하고 묻는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것은 감사와 찬미보다도 호기심과 어떤 이익을 바라는 마음, 그리고 흥분된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26-27절)

군중들의 잘못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비와 사랑 기적들을 채울 권능을 부여하신 선물을 주시는 분 대신에 선물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마태 12,28; 사도 10,38; 에페 1,13; 4,30; 2코린 1,22 참조)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주려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참된 양식이시다.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28절)하고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앞에 신뢰를 얻도록 하라고 하시며,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의탁하라고 하신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29절) 즉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그리스도, 하느님의 일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당신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이루어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믿으라고 하신다. 이것이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27절 참조).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30-31절)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빵의 기적을 벌써 잊어버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빵을 위한 빵만을 찾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마음이 없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기적보다도 만나의 기적이 더 위대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32-33절)

여기서 만나는 참된 빵이 아니며, 빵의 상징이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한 현세적 양식이었고, 빵의 기적도 현세적인 배고픔을 면해준 것으로 이것 또한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이 빵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33절)임을 상기시켜 주시고 계시다. 여기서 이 빵은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주시는 구체적인 인격체로서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34절)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통해 주시는 영적인 빵보다는 물질적인 빵을 택하고 있다. 이에 예수님은 당신을 참된 빵과 동일시하신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

“예수님께서는 선물 그 자체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L. Bouyer, Le quatrième Evangile, Casterman, Paris 1958, p. 125) 그러므로 신앙만이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모든 사람을 위한 “생명의 빵”이 되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우선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생명의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2독서: 에페 4,17.20-24: 새로운 인간

이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새 인간”(24절)이다. 그리스도를 택한다는 것은 죄로 물든 “옛 인간”(22절)을 벗어버리는 것과 또한 성령에 힘입어 끊임없이 새롭게 변모될 수 있도록 죄를 끊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2코린 5,17에서도 그리스도 신자를 “새 인간”이라 한다. 이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생명을 주는 빵”(33절)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신자는 끊임없이 변모되는 것이다. 참된 신앙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오신 생명의 빵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며 그분을 담고, 닮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