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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성 라우렌시오 는 / 조욱현 신부님 ~

-조욱현 신부-

로마의 일곱 부제 중의 한 분이신 성 라우렌시오(+258)는 교황 식스또 2세의 부제였다. 성인이 모시던 교황께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성인은 매우 슬퍼하였다. 이 모습을 본 교황은 라우렌시오 역시 삼일 안으로 당신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라우렌시오는 사형을 당할 때 석쇠 위에서 불에 태워져 순교하셨다. 그분의 일화 중에 석쇠 위에 누워서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제 한 쪽이 알맞게 익었으니 뒤집어 놓게!" 하셨다고 한다. 이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로마에서 이교 신앙이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의 문장은 석쇠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고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죽는 것으로 표현 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죽는다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거기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없이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의 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25절)라고 하시는 것이다.

복음에서 죽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죽이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대 사회적으로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이웃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을, 나의 의지를, 나의 고집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묵은 나를,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여 세상의 뜻을 따라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조류를 역행하는,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렵고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세상을 거슬러 살고 또 거기에 죽는 것을 견뎌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우리는 첫 발을 내딛기를 망설이고, 과감히 내딛지를 못하기 때문에 항상 제자리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신앙인이든 다른 사회에서나 내가 여기에 멈추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뒤쳐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공동체의 일치의 대열에서 스스로를 이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26절)라고 하신다. 나를 죽이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영광을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나 자신의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뜻을 버리는 것, 즉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순교 정신이며, 순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라우렌시오 성인을 본받아 우리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