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이 율법의 정신이다.
-박상대신부-
예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정결예식의 참뜻을 내세워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책망하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자선과 봉사로 마음부터 정결케 할 것을 가르치셨다. 오늘 복음은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본격적인 불행선언을 담고 있다.
어제 복음을 통하여 언급하였듯이 마태오복음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을 함께 묶어 그들에 대한 7번의 불행을 선언한다.(마태 23,13-32) 불행을 선언 받는 자세한 이유를 보자: ① 하늘나라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가로막는다.(13절) ② 갖은 노력으로 한 사람을 개종시켜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15절) ③ 성전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나 황금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16-22절) ④ 십일조 율법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정작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소홀히 한다.(23-24절) ⑤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25-26절) ⑥ 겉으로는 옳은 듯 하나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27-28절) ⑦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며놓고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29-32절)
루가복음은 바리사이들에 대한 불행선언 셋과 율사들에 대한 불행선언 셋을 보도하고 있다. 우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불행선언의 이유는 ① 십일조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소홀히 한다(42절), ②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43절), ③ 사람들이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무덤과 같다(44절)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에게 내려지는 불행선언의 이유는 ① 남에게는 어려운 짐을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도 대지 않는다(46절), ②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면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47-51절), ③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려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막는다(52절)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들에 대한 세 가지 불행선언과 율사들에 대한 첫 번째 불행선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님 당대에 모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율법학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통상 율사들은 바리사이들 부류에 속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이를 양심적이고 전적으로 따르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이라면 마지막 가장 사소하고 작은 것까지도 지키도록 요구하였고, 자신들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주신 하느님의 뜻과 정신은 사라지고 율법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결국 모든 인간에 대한 참다운 정의와 사랑, 즉 하느님 스스로가 율법을 떠나버리신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율법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빈 껍데기와 같은 율법에 신의를 건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는 율법과 사랑을 대립시키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빈 껍데기 율법에 다시금 사랑과 정의를, 즉 하느님 스스로를 채워주시려 하신 것이다. 사랑만이 율법의 참 정신이며, 사랑의 실천만이 율법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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