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때가 이르러 출가하신 예수님께서는 수난 직전까지 약 3년에 걸쳐
인생의 황금기이자 절정기를 보내시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활기차고 행복해 보입니다.
제가 예수님 입장이라 하더라도 너무나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크게 환영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에 온몸과 마음,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경청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빵의 기적을 군중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
가장 큰 고민거리들을 말끔히 해소해 주십니다.
평생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던 고질병 환자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악령의 횡포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못하고 매일 밤 성 밖 무덤가를 떠돌아다니던
마귀 들린 사람들도 구해 내십니다.
가는 곳마다 백성에게 참기쁨과 행복, 구원을 선물로 안겨 주시니,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분의 곁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급기야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식사 시간, 취침 시간, 휴식 시간마저 챙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던 사람들, 그분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나 감미로웠던 사람들,
그분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컸던 사람들이었기에 다른 고을로 떠나시는 예수님을 붙잡으며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합니다.
'제발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왜 하필 내 인생에 끼어들어 날 힘들게 하는가.'가 아니라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잡으니 예수님 입장에서 얼마나 행복하셨겠습니까?
이런 백성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셨지만, 한 고을에 눌러앉아 계셔야 할 작은 분이 아니시기에,
또 다른 양 떼들도 돌봐야 할 분이셨기에, 아쉽지만 또다시 여행길을 떠나십니다.
가끔 신자들로부터 그들의 본당 주임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인사 발령으로 떠날 때가 됐답니다.
돌아보니 주임 신부님과 함께 했던 날들이 꿈결같이 아름다웠답니다.
이렇게 떠나신다니 너무나 아쉽고 섭섭해 눈물이 앞선답니다.
제발 좀 더 계셨으면, 아니 단 1년만이라도 더 계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주교님께 청원까지 했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함께 쌓은 추억들, 사랑과 함께 주고받은 상처들, 떨쳐 버리기 힘든 아쉬움들,
미련들을 뒤로하고 홀연히 떠나가는 사목자의 뒷모습이 참으로 눈물겹고 소중합니다.
정녕 바람 같은 인생, 구름 같은 인생,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
있잖아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머물러 주실 수 있겠는지요
바람과 비와 눈과 냉랭한 하늘 아래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저 겨울 숲처럼
그리 서 계실 수 있겠는지요
……
저렇게 무리 속에서도 홀연히 설 수 있는 것은
외로움 속에 침묵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구요
……
저렇게 맑은 소리 내는 것은
제 안을 가득 채우지 않고
자꾸자꾸 비워 내기 때문이라구요
…….
< 축복의 달인>
양승국 신부의 영성 스토리
'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참된 기도지향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14 |
---|---|
~ 종말에 대한 이해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13 |
~ 빛나는 보석으로 재탄생하기위해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1.05 |
~ 최고의 덕행, 겸손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0.31 |
~ 사랑이 내게 다가온 날 / 양승국 신부님 ~ (0) | 2015.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