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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 박병규 신부님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2015-05-31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독서2:로마 8,14-17 독서:신명 4,32-34.39-40
복음: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시작 기도


풍요로움의 성령님, 제 안에 채워질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열한 제자…, 열두 제자에서 하나가 빠진다. 부족하다. 그래서 마땅치 않다 여긴다. 더군다나 열한 제자 중 더러는 의심까지 한다. 이럴 순 없다.

결핍과 의심의 자리에서도 경배는 이루어진다. 어찌 되었건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 앞에 ‘수긍’하지 못한 채 경배가 이루어진다. 부활 사건은 아직 낯설다. ‘사실’과 ‘수긍’의 거리는 꽤나 멀고 험하다. 내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나 자신과 새로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함께 계실 예수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다. 세 위격이 하나로 계시고, 각각이 구별되어 고유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늘 열려있는 신앙적 주제다. 거기엔 ‘모든 민족들’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 열한 제자의 결핍도, 의심도 ‘모든 민족들’ 안에서 채워지고 다시금 되짚어지리라. ‘수긍’의 길은 이렇게 열린 채 계속된다. 그게 신앙이다.

묵상


유럽말에는 각 단어마다 남성형, 여성형이 있다. 예컨대 해는 남성형으로 달은 여성형으로 표현되고, 하늘은 남성형이고 땅은 여성형으로 규정된다. 유학 초기 외로움에 힘겨울 때 선배 신부님이 이렇게 위로해 주셨다. ‘고독’은 여성형인데, 까탈스런 여자가 괴롭힌다 생각하면 외롭기보다 번잡하단 생각이 들 거라고…. 정말 그랬다. 누군가 옆에서 늘 치근대고 있다고 생각하니 외로움이 덜했다.

고독하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시끄럽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진정 고독을 즐기고 그 안에 머문다면 고독은 내적 풍요로움의 자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외부의 ‘사실’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것들이 나를 해치는지 위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사실’보다는 내적 음성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아야 한다. 내가 누군지, 내 안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 나에게 조용히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고독을 잃어버려서 정말 고독하다.

마침 기도


주님, 고독의 시간을 허락하소서. 아멘.

- 박병규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