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 나해:
사람의 아드님이 오시는 날
오늘의 전례는 만물이 어떻게 마지막 날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밝혀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그리고 잠시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영원의 승리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역사를 외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성을 완전하게 성장시킬 수 있도록 역사 속에 깊이 잠기는 것을 말한다.
제1독서: 다니 12,1-3: 그런 때라도 네 겨레는 난을 면할 것이다
1독서의 내용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5)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후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왕은 히브리인들에게 이교도들의 풍습을 강요하여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1절)가 되게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마카베오 시대에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신다.
1독서는 당시의 많은 순교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악인들은 ‘영원한 모욕’으로 벌하시리라고 한다(2절 참조). 이 말씀은 압박을 받으며 좌절해 있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희망의 메시지였다. 따라서 현실의 고통이 아무리 크고 힘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겨내라고 강조하고 있다.
1독서의 이 말씀은 육신의 부활을 긍정하는 구약의 문헌들 중의 하나이다(2마카 7,9 참조). 이리하여 인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을 자기 전존재로써, 즉 육체를 가진 자로써 만나게 될 것이다.
복음: 마르 13,24-32: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마르 13장 전체에 걸쳐 하신 ‘종말론적’ 담화에서 독특한 부분이다. 오늘의 이 대목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아들”(32절)이신 예수님께도 알려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신앙의 차원’으로 확대시켜 실현시키고 있다.
예수께서는 먼저 예루살렘이 당할 재난을 말씀하시고, 당신이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다시 오시리라고 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26절)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시며(마르 16,19) 마지막 날에 영원히 계속될 하느님 나라에 뽑힌 이들을 모으기 위해 다시 돌아오실 분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27절)라는 말은 히브리 사상에서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오직 이스라엘 12지파의 재결합만을 생각했지만(신명 30,4; 에제 34,12~; 이사 27,12-13; 43,5-6; 즈가 2,10; 8,7-8 참조), 여기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요한 11,52 참조).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는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하시며 알려주시고자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복음사가가 의도하는 것은 오셔야할 그분은 어느 때나 어느 순간이나 오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풀지 말고 깨어있어야 하는 ‘기다림’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29절).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28절), 주님이 문 앞에 다가온 줄을(29절) 알 수 있는 표징들이 있다. 예루살렘의 종말은 그 동시대인들에게 ‘표징’이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종말의 ‘예표’일 수 있었고, ‘예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32절). 그러기에 항상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마르 13,35-36 참조).
그러므로 종말론적 삶이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일상활동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온갖 사물과 이 세상을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보다 합당한 요소가 되게 하고, 언제나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의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언제나 오실 수 있는 그분을 맞이하는데 떳떳하고 기쁘게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사는 삶을 말한다.
제2독서: 히브 10,11-14.18: 예수께서 바치신 희생제물의 효과
2독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해 계속 전개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결정적이고 불반복적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 당신 자신을 봉헌하심으로써 신앙을 통해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완전하게 해 주셨다(14절 참조)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제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스러운 사제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아버지 오른편에 계시면서 당신의 사제직을 수행하고 계시다. 즉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는 사제직이다.
둘째는 2독서에 ‘종말론적’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12-13절).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에는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지만, 또한 우리에게 대사제이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아버지 오른편에서 수행하고 계신 사제직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 때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도, 그 때가 되어 여러 가지 어려운 때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잃지 말아야 할 희망을 간직하고 이겨내고, 또 항상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깨어있는 삶은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 줄 것이며 완성에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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