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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그리스도 왕 대축일 -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오는 왕권 / 조욱현 신부님 ~



그리스도 왕 대축일:

나해: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오는 왕권!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묵시 5,12). 오늘의 입당송은 오늘 대축일의 의미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전권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그러나 그분의 주권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즉 그리스도의 나약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이 ‘희생된 어린양’이라는 상징을 통해 나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권이란 패배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구원능력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구원의 은혜는 바로 사랑에서 나왔으며 그 사랑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그분의 왕권은 사랑과 봉헌과 봉사와 겸손과 화해 그리고 그분을 희생 제물로 만든 모든 불의와 폭력에 대한 항거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랑의 왕국을 원한다. 그러나 너무 이상적이고 어려워 보여서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1독서: 다니 7,13-14: 그의 주권은 영원히 갈 것이다

1독서는 영적인 ‘왕권’보다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듯한 신비스러운 ‘사람의 아들’ 모습을 한 이가 나타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리스 왕 안티오쿠스 치하에서 혹독한 고통을 당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알려주며 메시아, 사람의 아들이 주권과 영광을 가지고 찾아와 새로운 나라를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여기에 이 새로운 나라는 수난과 고통의 결실로서 얻어지게 된다고 나타나고 있다. 주권과 나라와 영화가 사람의 아들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리라고 한다. 그의 주권은 영원할 것이고 그의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의 아들은 우리의 왕이 될 것이다. 그 왕권은 모든 악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지배권이 될 것이다.

복음: 요한 18,33b-37: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왕국이 이 세상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표명하신다. 빌라도의 첫 번째 질문은 신원에 관한 것이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요?”(33b).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준 것이냐?”(34). 교활하고 경멸적인 빌라도는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라고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비하면서, 재판에 회부한 책임을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35절)에게 돌렸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왕권을 표명하신다. 그분의 왕국은 천상적인 것이라고 하신다. 만일 세상의 것이라면, 그분의 부하들이 싸워서 그분을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왕국은 이 지상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신다(36절). 인간의 왕국은 그러기에 게릴라들이 봉기하였을 것이고 이들이 그들의 수장을 보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라는 어떤 세속적 정치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빌라도는 빈정대는 말투로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37a). 예수께서 답하신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37b). 그러나 빌라도는 왕이 무슨 의미에서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려고”(37절) 태어나셨고 세상에 오셨다(참조: 요한 1,1-18). 로마에게 있어서도 진정한 왕이시며, 또한 유다인들에게 그만큼 사랑 받은 “진리”, 즉 무엇보다도 유다인들에게 먼저 천상적 가르침을 가져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왕권은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맡기신 “진리를 증언하는”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있었다. 어떠한 유혹도 협박도 이해관계도 그분을 물러서게 하지 못한다. 그분은 철저히 당신 자신과 모든 사건을 지배하시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오만불손하지 않으며, 아버지 하느님께 자유롭게 충실하신 분이시다. 여기에서 그분의 왕권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절대 진리이시다.(요한 14,6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구별이 있다. 하느님에게서 나서 하느님의 진리를 사는 사람은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받아들이고 따른다고 하신다(37c). 즉 타협이나 양보를 하지 않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상 진리 편에 서는 것이다. 그 왕국은 진리의 왕국이고 영원히 실현되고 있고, 성령 안에서 십자가 위에서, 진실한 증언에 있는 피와 물(19,30.34.35-37)에서 실현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왕권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왕권이다. 그러나 언제나 빌라도들이 진리를 밀어내고 있다.

제2독서: 묵시 1,5-8: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2독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당신 자신과 세상의 진리에 대해 보여주시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권은 묵시록에서 구원된 모든 이들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6절).

그래서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공통적 왕권을 재인식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증거하신 사랑과 진리의 모습으로 사회구조 속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그 왕직을 실행하도록 초대하고 있다(교회 36).

이 왕권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실행하는 것도 더 어렵게 느껴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봉사함으로써 다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수성’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리스도의 이 태도로 미루어 본다면 ‘왕이 된다.’는 것은 ‘종이 됨’으로써만 가능하며, ‘종이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고 할 정도로 고귀한 영적 성숙을 요하는 일이다. 보람 있고 효과적으로 남에게 봉사하려면 우리가 자신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제어를 가능케 하는 덕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왕다운 사명 즉, 그분의 ‘왕다운 직분’에 참여하는 일은 그리스도교 윤리와 인간 윤리의 모든 분야와 밀접히 연관된다.”(인간의 구원자 21항).

여기에 우리의 자세가 중요하다. 진리를 밀어내는 빌라도의 모습인가? 아니면 그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자의 모습인가?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분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진리를 끝까지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증거한 것에서 획득된 것이라고 했다.

그 왕권을 들어 높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 왕권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과 봉사로 실행하여 세상에 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알지만, 그 왕권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의 진리 안에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체험하며, 그리스도 왕께 찬미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