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산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만찬을 행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발현하셨으며, 승천하신 후에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성령강림) 교회의 발상지가 된 곳이기에 아주 소중한 성지이다. 또한 성령강림 때에 성모님은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 계셨으며(사도 1,12-14) 이곳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교회 전승은 전한다.
시온산은 335년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 위에 “부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예루살렘의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지였으며 주교좌가 있었던 곳이다. 시온산 위에 지어진 4세기초의 대성전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그 후 십자군 시대에 다시 최후의 만찬 기념성전(Coenaculum)을 지었지만 다시 이슬람에 의해 파괴 되었다. 그 후 폐허가 된 이곳을 1333년 나폴리 왕이 이집트 술탄으로부터 매입하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 봉헌 하였고,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는 이 부지에 수도원과 고딕식 양식의 2층 기념 성전을 지어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Coenaculum)이라고 불렀고, 이곳 수도원을 2백 여년 동안 본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은 1551년 오스만 터키 제국에 빼앗겼고, 기념 성전은 이슬람 사원으로 변모 되었다. 그 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도원 건물은 다시 이스라엘 정부 손으로 넘어갔고, 1층은 다윗의 무덤과 시나고가와 탈무드 학교를 만들었고, 2층의 성령강림 경당은 폐쇄시키고 최후 만찬 기념 성당만 개방 하면서 성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만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작은형제회에서는 1936년, 원래의 기념 성전 터 바로 옆에 부지를 구입하여 오늘날의 최후만찬 기념 성전과 수도원을 지었고,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최후의 만찬 및 성령강림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작은형제들은 1333년 최후 만찬 성지를 확보하고 수도원을 세운 후, 이슬람 당국자로부터 주님의 거룩한 무덤 성지의 공식 거주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작은 형제들은 그리스도교 전체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체를 대표하여 성지에 대한 법적인 소유권과 사용권을 갖게 된다.(1342년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칙서를 통해)
성지관구 관구 봉사자는 "예루살렘의 시온산 수도원 원장"의 법적 권한을 가지고, 성지 및 동방교회의 교황 대리자가 되었다. 지금도 성지 관구의 관구 봉사자의 공식 직함은 "시온산 수도원 원장"이다.아래는 "거룩한 시온산 수도원 원장의 인장" - 성모님과 함께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받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시는 모습...
시온산 게이트를 통과해서 왼쪽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이 현재 시온산 최후의 만찬 기념 수도원
수도원 내부...계단을 올라가면 기념 성당
수도원 정원
시온산 수도원 기념 성전 내부...최후의 만찬과 성령강림 미사는 이곳에서 봉헌된다.
기념성전 정면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조각상
최후의 만찬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님...
Pax et Bonum...평화와 선
성체성사를 상징화...
성령강림...
성체성사...빵과 포도...
발을 씻기심...
예루살렘아, 주님을 기려라.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시편 1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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