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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 / 김기현 신부님 ~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김기현신부-

 

어제 인사발령에 대한 공지가 있었습니다. 1월 중순에 움직이게 되는데요. 저도 대상자입니다. 저는 어디로 갈까요? 다리가 연결된 섬으로 갑니다.^^; 아마 지금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될 거 같은데요.

 

가는 거에 대해서는 기대도 바람도 없었기 때문에 별 느낌이나 생각이 없는데요. 지금 마음에 가득한 생각 중에 하나는 떠나는 거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입니다. 인사발령이 확정되었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자다가 중간에 깼는데 잠도 안 오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잔 정도 거의 없는 사람인데 눈물이 나오는 걸 보면 지금 있는 섬에 애정을 가지고 살긴 살았나봅니다. 한 분 한 분 얼굴이 지나가고 그 동안 한 일들이 하나 하나 지나가는데 짠하고 먹먹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내가 왜 이러나.. 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움직이는데 보이는 풍경들이 본당 밭이며 건물이며 마당이었는데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일하던 기억과 영상들이 지나가더라고요.

 

신자들과 함께 농사짓고, 청소하고, 쓰레기 정리하고, 조경하고, 잡초 뽑고, 작업하고, 싸우고(?) 했던 모습들이 지나갔는데요. 그 모습들이 고생스런 기억임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독서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전혀 그럴 거 같지 않은 모습들인데.. 이상합니다. 보이는 밭이 나에게 말하는 건 일해야지...’ 하는 것뿐인데도 어여쁘게 보입니다. 마당과 건물들이 하는 말들도 정리해야지.. 고쳐야지.. 달아내야지..’ 하는 것들인데도 어여쁘게 보입니다.

 

본당 신자 분들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님들이시고, 배를 타고 왔다갔다 하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날씨에 영향을 받아 확실치 않아 불안한데도 그 모든 것들이 어여쁘게 느껴집니다. 이상하죠? 콩깍지가 씌웠나 봅니다.

 

더 내어주고 쏟아 붓고 싶은 걸 보면 본당 공동체를 연인처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런 연인을 두고 떠나려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두 번 세 번 본당을 이동하게 되면, 떠나가고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첫 본당을 떠나는 건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떠날 때 짐 정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마음도 조금씩 정리하고 비워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