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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팁이유 ~ ! / 양승국 신부님 ~

    

 

 

                                     팁이유~!

 

 

  동창 신부의 부탁으로 판공성사 '품앗이'를 하러 한 본당 고해소 안에 들어가 있을 때였습니다.

날씨는 춥지, 배는 고프지, 판공성사 줄은 엄청 길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한 할머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성사 보기를 기다리며 길게 줄 서 있는데도 느릿느릿,

주섬주섬, 이것저것 천하태평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님의 고해성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면은 당신 죄는 하나도 고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의 죄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으셨습니다. 먼저 당신 가족 소개부터 하십니다.

아들들, 며느리들을 주욱 소개하십니다. 그러고 나서는 맏며느리부터 시작해서 막내 며느리까지

주욱 흝어 내려가면서 그들의 죄를 대신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30분가량 흘렀고, 저는 거의 순교자적 인내로 그 많은 죄를 다 들었습니다.

마침내 보속까지 드리고 나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까지 했는데도 할머님은 빨리 안 나가십니다.

답답한 마음에 "할머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무슨 문제! 고맙소이 신부님. 워매~, 쏙 씨언한거! 오랜만에 다 털어논께 쏙이 다 씨언하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칸막이 사이로 난 구멍 밑으로 뭔가를 제게 건네십니다.

받아서 봤더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할머님?"

 "너무 고마워서, 팁이유~!"

 고해소에 앉아 있을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성경 인물 한 분이 있습니다.

전직 세리였던 마태오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악취가 풀풀 풍기는 시궁창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세리들은 창녀들과 더불어 하류 인생의 대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이 얼마나 백성을 괴롭혔으면 "세리들이 다가오면 집들이 무서워 떤다."는 말이

백성 사이에서 떠돌 지경이었습니다. 유다 백성 사이에서 세리들은 매국노 또는 배신자로 불렸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마태오는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비참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세리의 삶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언젠가는 이 삶을 정리해야 하는데…….'하며 시궁창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쳐 봤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가난한 동족들로부터 거의 빼앗다시피 세금을 거두어들였으며,

정말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리대금업, 청부업, 인신매매 등 정말 사람이 해서는 안될 일들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태오의 인생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이 마태오의 인생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사랑이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감미롭고 포근하던지, 그 사랑이 얼마나 향기롭고 강렬하던지

마태오의 지난 모든 죄악과 과오, 고통과 상처, 죽음의 그림자를 일순간에 거두어 가 버렸습니다.

 

 "사랑이 내게로 찾아온 날 나는 정말이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사항이 오기 전만 해도 내 인생은 온통 회색빛에다 혹독한 겨울이었는데, 그 사랑이 내게로 온 이후

내 인생은 순식간에 화사한 봄날, 향기로운 꽃길로 변했습니다.

 

 사랑이 내게로 오기 전에 나는 어둡고 긴 터널 한가운데 있었는데, 그래서 내 인생에 기대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사랑이 내게로 온 이후 나는 한 마리 나비처럼 자유로워졌습니다.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워졌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나는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더 이상 세리라는 물 좋은 직책에도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목숨처럼 중시 여겼던 돈도 이젠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를 따라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내 인생의 어두웠던 그림자도

부끄럽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예!' 하고 응답하며 사랑 자체이신 그분 앞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세리 마태오를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자리에서 죄와 미움과 불신과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과감하게 자리를 털고 빠져나오라고,

시궁창에서 맑은 시냇물로 건너오라고, 혹독한 겨울에서 화사한 봄날로 넘어 오라고,

죽음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건너오라고, 저주의 인생에서 축복의 인생으로 넘어 오라고. 

 

 

 

                                                                  < 축복의 달인 >

                                                          양승국 신부의 영성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