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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삶의 본질, 일어섬 / 양승국 신부님 ~

                                                                 

 

 

                            삶의 본질, 일어섬

 

 

  과로와 고혈압이 겹쳐 그만 쓰러져 버린 한 형제를 안타깝게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조심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막심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몸 전체의 4분의 3가량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퇴원 후에는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워낙 자존심이 세고 의지가 강한 분이었기에 즉시 재활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잘나가던 시절 홍길동 이상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 분이었는데,

이제 자기 힘으로 홀로 서기도 힘듭니다.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기는 데 5분은 걸립니다.

마침 제가 집을 찾았을 때도 안간힘을 쓰며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걸어서 침실로 돌아오던 그 형제가 큰 난관에 부닥쳤는데,

높이 5센티미터 남짓한 문턱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넘어서기가 힘들어서 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크게 깨달았습니다. 정상인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장애우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큰 장벽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후로는 어디를 가나 장애우 입장에서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장애우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소홀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중풍 병자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습니다.

병세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그 환우는 걷기는 커녕 자기 힘으로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 앞으로 들려 왔습니다.

 

 연민의 예수님, 측은지심의 예수님, 해방자이신 예수님, 우리 모두의 자유와

구원만을 바라시는 예수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중풍 병자를 그냥 돌려보내실 수 없었습니다.

그 가련한 중풍 병자를 향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인류학상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직립입니다. 자신의 두 발로 바로 서는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일어섬으로 자신의 생명을 발현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생명은 바로 일어섬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풍 병자는 오랜 세월 그냥 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는 살아 있었지만 사실 죽어 있었습니다.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사실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중풍 병자가 오늘 예수님의 자비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는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한 가지 있군요.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지 못한 사람, 숨은 붙어 있지만 정신이 다 빠져나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 스스로 일어서지 못해 늘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

그들에게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보태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웃들의 일어섬에 동참하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삶의 본질은 일어섬입니다. 사실 참된 신앙이란 것은 죄와 죽음의 세력을 떨치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말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는 모두 '일어섬'을 뜻합니다.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거들랑

 그 돌 끌어안고 일어서라.

 나는 넘어짐으로 행복하였고

 일어섬으로 더욱 행복하였노라."(손희락, '일어섬에 대하여')

 

 

 중풍 병자 역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은혜로운 파스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서 펼쳐진 어둠에서 빛으로의 파스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는 파스카의 은총으로

드디어 제대로 된 인생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참사랑이 되어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 파스카 체험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의 삶 안에도 파스카 체험을 통해

생명의 땅을 향한 건너감이 이루어지겠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의 파스카 체험이 중요합니다.

살아생전 제대로 된 죽음과 부활 체험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면 그에 따른 하느님의 축복은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가 우리 내면을 한 번 흝고 지나가게 되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살아생전 제대로 된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고 나면 삶은 또 얼마나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다른 이들은 그냥 지나칠 작은 것들, 따스한 햇살, 신선한 공기, 한줄기 바람, 작은 풀꽃 한 송이가

그에게는 다 기적이요 축복이요 감사거리입니다.

 

 

                                                                     < 축복의 달인 >

                                                              양승국 신부의 영성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