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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눈을 멀게도 하고 보게도 하는 빛 / 김찬선 신부님 ~

눈을 멀게도 하고 보게도 하는 빛

-김찬선신부-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였습니다
.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다
.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성 바오로의 회심은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회개와는 다릅니다
.
우리는 보통 하느님으로부터 돌아서 있던 자신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섬을 회개라 하는데

바오로는 자신이 얘기하듯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
단지 자신이 믿어온 하느님을 너무 열성으로 섬긴 나머지

우리에게 오신 임마누엘 하느님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얘기합니다
.
너무 큰 빛으로 오셨기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한 것이고

너무 크신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셨기에

작은 이해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며

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하느님으로 오셨기에
낡은 믿음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

오늘 사도행전에서 자신이 하는 얘기에 의하면

바오로는 눈부신 빛 때문에 볼 수 없게 됩니다
.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빛 때문에 우리는 보기도 하지만

빛 때문에 눈이 멀기도 합니다
.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6개월 동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
빛에 눈이 너무 부셔 칠판을 볼 수가 없었고

밝은 빛에 나아가면 아예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
다시 말해서 작은 빛, 어둔 빛으로만 볼 수 있었던 것이고

빛이 너무 크고 밝으면 눈이 부셔 아예 눈이 멀어 버린 것입니다
.
그때 시골이라서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했기에

왜 그런 것인지 모르고 또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 눈의 조리개가 아마 영양실조로 고장 나

작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
실제로 북한의 많은 아이들이 지금도 영양실조로 실명을 합니다
.
이렇게 고장이 나거나 실명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둔 곳에 있다가 갑자기 환한 빛 가운데 나아가게 되면
순간적으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

영적으로도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영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영으로만 볼 수 있는 하느님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그런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태생소경에게 시비를 거는 지도자와 같습니다
.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본 것밖에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하느님은 무한하신만큼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안 것 이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가능성의 현실태이십니다
.

그러므로 영적으로 볼 수 있기 위해서

지금까지 형성된 모든 고정관념의 비늘이 눈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
교만의 단단한 각질이 떨어져

겸손으로 눈이 영과 신비에 열려야 합니다
.
그리고 영과 신비에 열려있는 새로운 눈으로

무한한 가능성이신 하느님을 보고

무한한 가능성의 현실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봐야 합니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모든 조물들과 소통하는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

바오로에게 이런 눈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절대로 자기 스스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너무도 고맙고 소중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바오로는 이제 그분께 자기 전부를 걸고

자신이 체험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