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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 2주일 다해 - 영광스러운 모습의예수님 / 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2주일: 다해: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조용히 참회와 보속을 하는 시기에 영광스러운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오늘의 루가복음은 사순시기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파악하도록 해주고 있다.

1독서: 창세 15,5-12.17-18: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

오늘 1독서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느님의 계약 즉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 수만큼이나 많게 하고(5) 팔레스티나를 영원히 거처할 곳으로 주시겠다는 계약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18). 이 계약의 실현여부는 오로지 모든 것이 먼 훗날에 이루어지리라는 그 말씀을 믿는데 달려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기 자신을 변모시키는 능력을 지닌 믿음이었다. 자신의 믿음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자기의 후손들까지 변모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아브라함도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의 생활도 사순절의 기다림과 앞당겨진 파스카의 빛으로 신비스럽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도 매 순간 이 변모의 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복음: 루가 9,28-36: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였다

오늘 복음은 사순절의 분위기로 이끄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산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기도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28-29). 여기에 예수께서 기도하신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고, 그 기도가 그 영광스러운 변모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맡길 수 있다. 루가복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기도의 주제가 바로 이 사순시기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사순절의 의미가 기도의 표지 아래서 더 잘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에 우리가 참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열렬히 타오르는 기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복음에서는 단순하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30)는 사실만 전해주고 있는데 반해, 루가 복음은 두 인물과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전해주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31).

여기서 죽음이라고 한 말은 원문으로 ‘exodos: 출애굽, 대탈출이다. 즉 결정적인 해방과 약속의 땅을 향한 출애굽의 모든 주제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은 출애굽 사건과 같이 결정적인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사건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는 고달픈 여정이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여정을 반복적으로 이해시키고 있는 사순절의 분위기로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세 사도들의 졸린 눈에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는 내용이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32). 그리고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다(34)고 한다. 이 구름은 특별한 신적 현존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 즉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은 수난과 수모를 당하시겠지만 한결같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아들’(35)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무 힘없이 십자가 위에 죽음을 당하시지만, 그분은 산에서 보여주신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아 그 고통과 괴로움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변모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예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의 빛을 위한 것으로써, 우리가 지내는 사순절의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택하신 아들예수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예수께 일어났던 그 사건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된다. 우리 자신이 신앙을 통해 아브라함이 변화되고 그의 자손들이 은총을 입었듯이 그처럼 변모되어갈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딸로, ‘그분과 같이’(1요한 3,2)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35)는 말씀을 잘 따라야 한다. 우리는 신앙으로 약속된 땅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이미 그 영광을 미리 내다보고 있고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우리를 속이거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들으며’(35) 즉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에 그 영광을 체험할 수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광야와 같은 이 사순절은 어떤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목적지에 미리 도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순간순간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이미 부활의 신비를, 영광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이렇게 될 때, 진정 파스카 신비의 완성인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2독서: 필립 3,17-4,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 십자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들의 생활에서 고달픈 십자가를 회피함으로써 사순절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18-19).

즉 갈바리오를 향한 여정이 없다면 파스카의 기쁨은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늘의 시민으로서(20)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변모의 기다림 속에서 자신의 생활을 매일매일 변화시켜 가는 삶을 통하여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될 자격을 갖춤으로써 신앙 안에서 그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묵상한 바와 같이 이 사순절이 바로 우리 자신의 변모를 이룰 수 있는, 그래서 우리가 합당하게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할 수 있는 은총의 시기가 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의 열심한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함으로써 그 변모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20-21). 나 자신의 참된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