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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3주일 - 마음의 회개로자유를 누림 / 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3주일: 다해:

마음의 회개로 자유를 누림


오늘의 전례는

우리 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의 표징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고 있다.


하느님 현존의

 표징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냥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어 나갈 때,

즉 회개할 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순절의 특별한 메시지며 오늘 복음의 주제이다.



1독서: 탈출 3,1-8.13-15: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계시하심으로써,


당신이야말로 항상 모세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며

 구원해주시는 분이심을 선언하신다.


이 야훼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본질을 나타내기보다

그분의 구원적 능력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나는 있는 나다라는 의미이며,

이는 내가 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며

구원하는 하느님이다고 하시며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무로부터 창조하시어

자유로운 백성으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게 해 주셨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과 함께 계신 하느님을 따라야 한다.

하느님께 자신을 일치할 때 그분의 구원적 능력이 나타난다.


복음: 루가 13,1-9: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두 대목으로 되어있는데

 모두 다 회개와 연결되어 있다.


첫째 대목은(1-5) 갈릴래아 사람들이

파스카 축제 때에 희생제물을 봉헌하고 있었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 중

 일부를 학살한 사실과,

실로암에 있던 탑이 갑자기 무너졌을 때

 그들 가운데 열여덟 명이 희생당한 사실이다.


이 사실에 대해

 예수께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시는가를 보고 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망할 것이다.”(2-3).


그들은 모든 불행을

다 정해진 죄에 대한 형벌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현실을 보다 깊이 깨닫기를 회피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평온히 유지하는 편리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거절하신다.

이러한 생각과 똑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현실을 오로지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수단이나,

정해진 사회의 구조에 의해서만

 설명할 때에는 그와 비슷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적 신앙을

두 번씩이나 거절하시면서 말씀하신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망한다.’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보다도 영적인 파멸’,

즉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원의를 갖지 않는다면


 인간 그 자체로서

 이르게 되는 본질적 파멸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 회개는

 생명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즉 회개는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면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생명과 성장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회개란

우리 자신의 피상적인

신앙을 버리고,또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라는 초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들은 덮치면서

나를 스쳐 가는 이유가 특별히 있기 때문인가?


만일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택하시고 나를 택하시지 않으셨다면,

 그분께서 내게 아직 결정적으로 마음을 결정할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그리고 죄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볼 때에 나 자신이 더 열심히

 투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을 통하여서든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메시지를 깨달으려는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회개는 바로

 매일의 현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항상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가르침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마태오(21,18-19)

마르코(10,12-14)

 예수께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하셨다.


이것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지만,

 루가는 심판과 처벌의 의미보다는 자비와 기다림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주인은

 삼 년을 기다리면서

 열매를 기다렸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을 때에도,

포도원지기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주인의 모습이다.


주인은

 이런 아량을 통해

자신의 크나큰 자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인내로이 기다려주신다.


그것은 우리가

적절한 시기에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기다려주신다는 것은

그분의 자비의 표징이면서 또한 심판의 표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분의 인내로운

기다림을 저버리는 사람들에게

는 그것이 더 무서운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매순간순간은 항상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고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순간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회개하고

 그에 맞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총이 크면 큰 만큼 책임과 위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거나

게을리 한다면 우리에게도 같은 불행이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맞은

위험에 놀라서 이집트 노예생활에 대해 향수를 갖고 끊임없이 불평을 한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탈출 14,11-12).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쉬운 일도 안이한 일도 아니다.

사순절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매일의 사건들과 현실들을 통해

입증되는 마음의 회개로써 자유를 성취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되돌아감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 자유를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