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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 14주간 금요일 박해를 받게 돼는 신앙인들 / 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14주 금요일

복음: 마태 10,16-23: 너희는 나 때문에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양들이리떼의 의미를 보면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육에 따른 악한 것이 그 안에 항상 들어 있기 때문에 선할 때는 양이라고 하지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양과 같다고 한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리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대하라고 하신다. 뱀은 지혜의 상징이며 비둘기는 순결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이것은 선을 위해 악을 참고 견딜 때 승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순명하였다. 그들이 순종한 것은 어떤 무서운 일이 닥친다 해도,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더 많은 은총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 할 것이다.”((17)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조심하여라.”(17)고 하신다. 왜냐하면 모든 악 가운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장 악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동물에게는 이성이 없기 때문에 동물의 잔인함은 인간의 잔인함에 못 미친다. 이성적인 인간이 잔인하게 굴면, 그 잔인함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영광스러운 것은 어떤 좋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좋게 끝맺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끝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23) 이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박해를 하기 때문에 그 복음이 다른 나라로 들어갈 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올바로 살지 않으면 그 자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또한 박해를 당하면 당장 위험에 뛰어들어 죽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죽게 되면 그들에게 배워 은혜를 누리게 될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말씀 안에 확고히 뿌리를 박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일을 선택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 자꾸 사람의 일로 돌아가려는 나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삶이며, 우리는 이 시대에서 순교정신을 살 수 있다. 지금의 순교는 바로 하느님의 뜻 때문에 나 자신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