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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관련 글

~ 하느님 없는 경제권력은 새로운 독재 / 교황 프란치스코 ~

                                               



하느님 없는 경제권력은 '새로운 독재'

[앞으로 이 코너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 번역문을 연재합니다. 이번 글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5월 16일 바티칸을 방문한 세계 각국 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발언한 내용으로, 첫 인사와 마지막 인사말을 제외한 연설문 전체를 박동호 신부가 번역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편집자] 


 

여러 분야에서 성취한 업적을 볼 때, 인류 가족은 지금 중대한 역사의 전환기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보건, 교육, 통신 같은 분야 따위에서 참된 인류 복지 증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매일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바라봐야 합니다.

 

심리적인 결과를 수반하는 여러 병리현상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옥죄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삶의 기쁨은 사라지고 있으며, 타락과 폭력은 그 도를 더해갑니다. 빈곤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그것도 빈번하게 굴욕적인 방법으로라도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상황은 우리가 돈과 맺는 [왜곡된]관계에서, 즉 돈이 사람과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금융위기의 궁극적 원인을 잊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의 위기에서 금융위기가 생긴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먼저라는 것을 부정하는 그 위기에서 금융위기의 궁극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구약의 황금송아지 숭배가(탈출기 32,15-34 참조) 오늘날 돈 숭배와 어떠한 인간적 목표도 갖지 않는 정체불명의 경제 독재 속에서 새롭고 냉혹한 이미지를 갖고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전 세계적 금융 및 경제 위기는 금융과 경제의 왜곡이 최고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금융과 경제는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의 금융과 경제는 사람을 오직 무엇인가를 필요로만 하는 존재로, 즉 소비만 하는 존재쯤으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인간 그 자체를 사용하고 내다버릴 수 있는 소비재쯤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내다버리는 문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개인과 전체 사회 차원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정도는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물인 연대성(연대의 정신)은 반생산적인 것으로, 금융과 경제 논리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소수의 수입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가운데 다수의 수입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이런 불균형은 시장의 자유와 금융 투기의 자유를 절대시함으로써, 결국 공동선을 증진해야 할 책임을 갖는 국가의 적절한 통제의 권리를 부정하는 그런 이데올로기에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눈에 띄지 않고 때로는 공공연한 새로운 독재가 구축되었습니다. 이 독재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그 자체의 법과 지배력을 일방적으로 행사합니다. 부채와 신용은 국가와 국가의 실물경제를 분리시키고, 시민을 시민의 실질 구매력과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세계적 차원을 띠고 있는 부패와 이기적 탈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권력과 소유의 의지는 무한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태도 뒤에 숨어있는 것은 윤리의 거부, 일종의 하느님 부정입니다. 연대성 같은 윤리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윤리는 반생산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돈과 권력을 상대화시키기 때문에 윤리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그 무엇쯤으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윤리는 인간을 조종하고 종속시키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봅니다.

 

윤리는 하느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은 시장의 범주들 밖에, 즉 시장 논리의 통제 밖에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갖는 금융인들, 경제학자들, 정치인들은 하느님을 경영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경영할 수도 없으며, 더 나아가 위험한 존재로 여기는데, 하느님은 인간을 완전한 자기완성에로, 어떤 형태의 예속으로부터의 독립에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으로 윤리(당연히 이데올로기의 윤리가 아닌)는 보다 인간적인 균형 잡힌 사회질서를 창조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금융 전문가들, 정치 지도자들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강탈하는 것이며 그들에게서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라자로에 관한 강론, 1,6 - PG 48, 992D)

 

경제 개혁,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경제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금융 개혁이, 윤리적 노선을 따르는 금융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태도변화가 요구될 것입니다. 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자기 나라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면서 확신과 장기전망을 갖고 이 도전에 응하라고 촉구합니다. 돈이 [사람을] 섬겨야 하지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은 부자건 가난하건 똑 같이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교황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재촉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북돋워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교황은 금융과 경제 분야에서 사심 없는 연대와 인간 중심의 윤리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교회는 항상 모든 사람의 전인적 발전을 위해 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공동선이 단순한 여분의 무엇이 아니며, 단순히 정치 프로그램에 덧붙여진 부수적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교회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시민의 공동선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라고 격려합니다.

 

교회는 금융 지도자들이 윤리와 연대성을 고려할 것을 촉구합니다. 왜 그들이 하느님께서 설계한 것에서 그 영감을 퍼 올려서는 안 되는지, 왜 하느님을 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윤리를 향한다면, 하느님을 향한다면, 경제와 사회 영역 사이의 벌어진 절대적 이분법을 극복하고, 건강한 공생의 상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사고체계가 나타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목자들과 가톨릭 공동체의 교우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기쁘고 용감하게 형제적 사랑과 신앙을 실천하기를 촉구합니다. 교우들은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주도적인 태도로 자기 나라의 [참된]발전에 두려움 없이 기여해야 합니다! (2013년 5월 16일, 신임 대사들에게)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3월 콘클라베에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철도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교황은 교회개혁 의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에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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