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다해:
신앙인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세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아주 평범한 것들을 소재로 가르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의 짤막한 두 개의 비유는 ‘잔치’라는 소재를 통해 보다 깊고 보편적인 어떤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응하지 않은 사람들에 관한 비유(14,15-24)도 같은 내용이다. 잔치를 우정, 인간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조그마한 사건이라도 현실을 초월한 신적인 메시지에로 개방되어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들이,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것들이 신적인 것에로 나아가는 길, 상징 예표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의 메시지는 그러므로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나, 다른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할 때에 취해야 할 사회적 행동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이루어지고 있는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잔치에 참여해야할 우리의 태도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신앙인의 삶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에 그 삶 자체가 항상 잔치이다. 그 잔치에 참여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오늘 독서는 말하고 있다.
복음: 루가 14,1.7-14: 하느님 앞에 겸손하라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 가셨을 때, 모두가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1절)고 하신다. 이 비유는 바로 하늘 나라에 대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거짓이나 위선으로 자신을 자랑하여 내세우지 말고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올바른 사람으로 자처하고 자기의 특권을 뽐내어 주장하는 사람을 하늘 나라에서 제외시키신다. 반대로 하느님의 선물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을 받아들이신다. “주님께서는 온유한 이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신다.”(집회 3,19).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의 비유에 있어서도, 바리사이파 사람은 마치 식사에 초대받은 이들이 그랬듯이 하느님 앞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였지만, 세리는 그러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당하다고 하며 자비를 구한다. 그래서 세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A. Stöger, Vangelo secondo Luca, vol. II, Roma 1969, p. 33).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규범은 겸손이라는 것이다. 겸손을 통해서 낮은 자리를 찾는 것이 하나의 은총이며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행위이다. ‘윗자리로’(10절) 불러올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는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내가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고 그분의 손에 우리를 모두 맡길 수 있다면 그분이 우리를 크게 만들어 주신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모델이시다.
그분은 첫째이시지만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필립 2,9). 하느님 나라에서의 위대성이란 겸손과 봉사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낮은 사람이 되거나 그들 가운데 있도록 할 때, 우리는 가장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우둔함이 첫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기주의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 그러한 사심과 계산을 버릴 것을 요구하신다. 잔치를 베풀 때에 똑같이 되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를 것이 아니라, 되받지 못할 사람들을 불러서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갚아주심을 기다리라(12-14절 참조)고 하신다.
여기서는 첫째로 ‘무상성’을 가르치신다. 오직 진실 되고 단순하며, 티 없이 맑은 뜻으로 행해지는 행위만이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부차적인 계산 때문에 그 행위 자체가 파괴된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유일한 ‘보상’은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14절) 주님께서 주실 바로 그것이다. 이때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양심과 행동의 ‘무상성’을 되찾게 된다. 그 때의 행위가 겸손을 통해 위대하게 된다.
둘째로는 이 무상성 외에도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사회 속에서 바로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가 너무 간과해오고 있지 않았나 한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이들은 바로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노인, 기형아, 지체부자유자, 마약중독자, 감옥에 갇힌 이, 난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는 것도 겸손의 행위이며 마지막 자리를 택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윗자리에 오르라’는 초대를 받을 것이다.
제1독서의 ‘지혜’의 가르침도 복음과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집회 3,18-20).
이제 하느님 앞에 스스로를 낮출 수 있고 겸손된 자세로 주님 앞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 진정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될 것이며, 그 겸손한 자세로 더욱더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으로 대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 그에 대한 풍성한 갚음을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믿고 바라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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