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여는 문 '이콘'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속의 성모
- 작가 미상.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발을 벗는 모세와 그 불길 속에 성모를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심을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모세는 떨기나무에 붙어 타지는 않고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모습을 묘사한 동방교회의 성화들에서는, 불꽃 속에다가 앞서 소개한 표상의 성모 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의 모습을 함께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나 러시아 등 동방의 정교회 국가들을 방문하다보면 이 낯선 모습에 가톨릭신자들, 특히 한국 가톨릭신자들은 적잖이 당혹해한다. 그렇다면 모세와 성모님은 어떤 연관 관계인가? 동방의 비잔틴 전통에서 이렇게 묘사하는 이유는 나무가 불에 타고 있지만 실제로는 타지 않고 있는 불가능한 현상을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셨듯이, 성모님도 처녀였지만 동정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낳은 불가능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행하셨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모세에게 보여주신 이 기적은 미래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에 대한 예표로, 하느님은 못하시는 일도 없고 불가능함도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주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동방의 신학자들은 호렙산의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면서, 처녀성의 손상을 전혀 입지 않고 그리스도를 낳은 지극히 거룩한 ‘테오토코스’(신을 낳은 자, 성모 마리아)의 모습도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의 성화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 중앙에서 거룩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육화 이전,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주신 표징은 빛, 바람, 구름, 불 그리고 말씀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접한 모습도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길과 그 속에서 들리는 말씀(로고스)이었다.(탈출 3,4 참조)
요한 복음 첫 머리에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문장이 나오듯이 이렇게 말씀이 인간이 되심, 즉 동정녀의 잉태를 이렇게 불길 속에 묘사해 그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에서 들려온 그 말씀, 바로 그분이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도 드러낸다. 동방의 교회들은 빛으로 묘사된 영광의 하느님의 실체를, 거룩한 교부들과 공의회의 전통에 따라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로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석가들은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지만 그들의 신앙을 결코 꺾지 못했고, 또한 그들의 신앙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음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동방 정교회에서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예표하는 찬송가와 신학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2일,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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