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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기도

+++ ( 이콘) 성령강림대축일 / 이오나의 성 골룸바 아빠스 / 성 에프렘 부제 학자 /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 기념 일 +++

 

[이콘] 성령강림.러시아화파. 17세기. 57.1x91.4cm

 

네 복음사가들은 자신들의 복음서를 손에 들고 나타난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들은 가르침의 은사를 받고 있다는 표징으로써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비록 공관 복음사가들이(마태오,마르코,루가) 이 사건에 출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도 바오로는 확실하게 출석하지 않았지만, 성령의 내주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지체가 되는 전체 교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여기에 현존하고 있다.

 

바오로와 베드로는 둥근 자리의 윗부분에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앉아 있다.

복음사가들은 그들 뒤편에 각각 두사람씩 앉아 있다.

그리고 베드로와 바오로 사이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신비체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자리이다.

 

이 이콘의 제일 윗 부분은 12개의 섬광을 가진 천상 만돌라가

각 사도들의 머리 위에 임하고 12개의 불혀의 강림을 묘사한다.

이 불혀들은 세례자 요한의 예언을 상기시킨다.

"그는 너희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다."(사도3,11)

 

동방교회의 성령강림 이콘에는 성모님이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주님의 제자들이 반타원형으로 앉아 있으며,

그 한가운데의 열린 공간은 성령께서 머무시는 새로운 내적 공간을 상징한다.

그 한가운데는 왕관을 쓴 이가 흰 천을 들고 서 있다.

 

왕의 이름은 코스모스로 전 세계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 어둠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어둡고 해방을 갈망하는 세상에 성령이 임하셔야 함을 나타낸다.

12개의 두루마리를 지닌 그의 손에 걸친 하얀 천은

그들의 가르침으로 전 세상에 빛을 가져오는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

 

성령강림의 이콘은 그리고 이날의 대축일 전례는

신자들로 하여금 바벨의 혼돈과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조화,일치 사이에 대조를 상기시킨다.

-이콘.신비의 미(편저 장긍선신부)에서-

 

 

 

 

 

 

구약의 시대를 하느님의 시대

그리고 신약의 시대를 예수님의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라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활동 안에서 새로워 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聖靈 降臨 大祝日.

라틴어 Pentecostes. 영어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한 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이 사도들에게 강림 한 것을 기념하는 교회의 이동 축일입니다.

이날은 특히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설립되고 선교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의미하는 라틴어 펜테코스테스(Pentecostes)는 ’50번째’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펜테코스테’(πεντηκοστη)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대축일 전야 때 세례성사를 받는 예비신자들이 하얀 망토를 입었던 것에서 유래하여

화이트선데이 (Whitsunday) 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의 기원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사도2,1 : 토비2,1 : 2마카 12,32)은

보리와 밀을 거두어들이고 나서 햇곡식을 하느님께 드리는 봄 수확 감사제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축제를 팔레스티나 땅에 정착한 후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데,

이것이 후에 구원 역사와 연결되어 시나이 산에서 이루어진 계약과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축제를 과월절 첫날부터 시작하여 7주간 후인 시반 달 (현재의 5월) 6일에 거행하였고

이 과월절을 기점으로 50일 후에 거행되는 축제라는 의미에서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오순절은 초봄의 과월절과 늦가을의 초막절과 같이 순례 축제이기 때문에

13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라면 누구나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령강림이 있던 그 날 예루살렘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고

예수의 제자들 및 동조자들도 그곳에 모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날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는"청각 현상(2,2)과

"불같은 혀들이 갈라지면서 그들에게 나타나는" 시각 현상(2,3)으로

극적인 효과를 자주 사용한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보듯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리셨습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사도들은 여러 가지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었고,

성령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로 대략 3,000명이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2,1-41)고 합니다.

성령강림을 통한 여러 가지 말의 기적(2,3-4, 6-11)을 전한 사도 행전의 저자는,

바벨탑으로 분열된 민족들(창세 11, 1-9)과 대조시키면서

온 인류의 일치. 복음 선포의 의무,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신학적인 주제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과월절이 예수의 부활을 뜻하는 것과 같이 과월절로부터 50일째가 되는 오순절은

 예수 부활로부터 50일째에 성령이 강림한 날 즉 성령 강림절에 된 것입니다.

 

 

 

Pentecost-GRECO, El

1596-1600. Oil on canvas, 275x127cm Museo del Prado, Madrid

 

성령 강림의 의의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 설립 기념일입니다.

성령 강림 이후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백성에게 선포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이어서 세상 종말까지 지상의 나그네요 순례자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구현할 사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탄생, 즉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탄생과 그 시작은

성령의 놀라운 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힘은 인종과 나라의 온갖 장벽과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Ω. 불혀 모양으로 강림한 성신은

사도들의 지혜를 밝혀주고 마음을 뜨겁게 해주며 여러 가지 언어를 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그리스도안에 하나로 뭉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사도 2, 1-47 참고)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기 위하여 모의하는 데 쓰인 말을 뒤섞어 놓으신 하느님께서 그 벌

(바벨탑 이야기 : 창세 11, 1-9 참고)을 거두시고

온 인류를 한데 모으시려는 당신의 구원계획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Ω. 추수감사제에 성령을 보내심은 모든 사람을 추수(모으심)할 때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율법과 정의로써 다스리셨지만

 ’새로운 계약’을 맺는 "신약의 백성"은

성령의 은총과 사랑으로 다스리겠다는 하느님의 의지를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Ω.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 영이요, 주님 친히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위로자(협조자)와 보호자로 오셨습니다.

또한 성령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진리를 세세 대대로 전하며

더욱 깊이 터득케 하고 실천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상의 나그네요 순례자인 교회는 세상 종말까지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구현할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백성을 보호하고 영도하는 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까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강림 전례의 특징

 

사도 시대부터 매년 부활을 기념하였던 것처럼 2세기부터는

성령 강림을 기념하기 위해 성령 강림절을 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오순절은 부활 시기 50일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부활 주일로 시작되어 8주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절은 여덟 번째 주일이었으며,

부활시기의 종말론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이날을 특히 강조 하였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 시기는 끝나고 연중 시기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부활 시기 동안 제대 옆에 놓였던 부활 초는 성령 강림 대축일 이후 세례대 옆에 보관해 두거나,

세례대가 없는 경우 다른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세례식 때 다시 사용 됩니다.

또 부활 팔부 미사 동안"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파견의 말 뒤에 덧붙여 사용된

 ’알렐루야, 알렐루야’가 다시 이날 미사 중에 사용됩니다.

미사에 사용되는 제의는 성령의 사랑과 불 혀 모양을 상징하는 빨간 색이며,

부속가 (sequentia ; 성령송가)가 제 2독서 후 알렐루야 전에 노래하거나 읽혀집니다.

 

성령께서는 전례 안에 활동하시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전례행위를 그리스도의 행위가 되게 하십니다.

때문에 연중 시기가 모두 ’성령시기’라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 기도 한다기 보다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인 듯 합니다.(로마8, 26 참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날 특별히 미사 중에 다음과 같은 ’성령송가’(sequentia)를 바칩니다.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이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 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의 빛이시여, 저희 맘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저희 삶 그 모든 것 이로운 것 없으리.

허물은 씻어 주고 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 고치소서.

굳은 맘 풀어 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의 생활에 비추어 본 성령의 활동 (대건 출판사刊 생활교리中에서 발췌)

 

▷ 방언, 구마, 치유 같은 성령의 특별한 은혜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 데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올로는 성령의 은혜에 대해서 고린토 전서 12장과 14장에에서 상세히 말하는데,

그 중간(13장)에서 사랑에 관해 강조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가리와 다를 것이 없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다’라는 말대로

성령은 무엇보다 극히 일상적인 일 즉 그리스도교적 사랑 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올로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평화, 인내, 친절, 선량, 진실, 온유, 절제"(갈라 5, 22)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와 은총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숨은 성실, 몰아적 친절(예: 고통받는 병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

묵묵히 그리고 겸손한 의무수행(예: 어머니가 가정을 돌보는 것),

하느님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보다 더 넓고 크다는 확고한 신념과 유혹에 대한 끈질긴 저항,

어려운 형제를 도와주는 친절과 동정, 고요히 기도하는 항구하고 열렬한 마음, 고통중의 인내,

착한 양심의 희열 등, 이런 것들이 바로 오늘날의 성령의 활동입니다.

 

▷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내렸던 성령의 은총은 현대 교회의 그것과 형태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그때와는 다르기 때문이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오늘날의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사목 능력,

밝은 지혜, 현명한 지도력, 뛰어난 예술성,

탁월한 삶의 모범 등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이상한 언어를 하는 것보다는 더 큰 귀감이 될 것입니다.

 

▷ 위계적(位階的)인 성직 자체는 다른 특은들의 진위를 가려내는 하나의 특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예언자라든가 영은 의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을 잘 깨닫도록 하시오.

그것은 곧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1고린 14, 37-38)고 사도 바올로는 말하였습니다.

 

▷ 우리가 성령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성령은 히브리말로 ’숨, 바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공기의 고마움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공기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얼굴 한 번 감추시면 그들은 갈팡질팡, 얼을 거두시면 그들은 숨져버려 드디어 티끌로 돌아가고 마나이다.

보내시는 당신 얼에 그들은 창조되어, 누리의 모습은 새롭게 되나이다"(시편 103, 29-30)

라고 우리는 기도하며 성령의 은총을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은총’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이 말은 성령의 활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 칠은  

 

성령이 베푸는 7가지 은혜는 개인의 신앙을 성숙시켜 견고하게 해주고

덕을 닦을 수 있는 자세를 키워주는 은사입니다.

칠은 중에 지혜(sapientia, 슬기)·이해(inteleetus, 깨달음 또는 통달)·의견(consilium, 일깨움)·

지식(scientia, 앎)의 은혜는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덕으로 나아가도록 인간의 지성을 준비시켜 주고,

용기(fortitudo, 굳셈), 효경(pietas, 받듦 또는 공경)·두려워함(timor, 경외)의 은혜는

인간의 의지를 굳세게 해줍니다.

그리고 칠은은 대신덕(향주삼덕)과 윤리덕(사추덕)을 닦도록 도와줍니다.

 

지혜 슬기 / 열매:사랑.절제

이 은사는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들을 올바로 판단하고 맛들이며 실천하도록 돕는 은혜입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판단할 때 인간적 판단 기준을 버리고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며 판단하게 해 주며, 신앙을 실천하도록 해주고

삼위일체 하느님이 자신 안에 머물러 있음을 체험하게 해주며, 관상과 활동이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이기심 없이 순수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하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탁월하게 완성시켜 줍니다.

 

이해 통달 / 열매:평화.믿음

이 은사는 계시 진리를 직관으로 깊이 통찰하여 잘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이 은사로 인간의 지성은 성령의 비춤을 받아 계시 진리를 직관하고,

초자연적인 목적에 관련되는 자연 진리도 쉽게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이해의 은사는 신앙의 덕을 완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여러 가지 효과를 주는 데

성서의 숨은 의미를 밝혀 주고 교리를 깊이 깨닫도록 도와주며,

상징과 표상의 의미를 밝혀 주고 상징과 감각적 표지 안에 감추어진 영적 실재를 보게 함으로써

전례에 대한 이해와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와 묵상 중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성숙한 신앙인에게 신앙을 통해

세상의 일을 보게 해 주며 믿음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게 해줍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의 눈이 통달의 은혜로 정화 될 때 지상에서도 어느 정도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의견 일깨움 / 열매:온유.인내.사랑

이 은사는 초자연적 궁극 목적인 하느님과 구원과 개인의 성화라는 관점에서

신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판단하게 하는 초자연적인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거짓 양심에서 신자들을 보호해 주므로 영성 지도자들과 고해 사제들에게 특히 필요합니다.

이 은혜는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나 예상하지 못했던 위급한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올바로 판단하게 하며 그 상황과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주며 남을 지도하고 일깨우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을 깨우쳐 주므로 장상과 지도자 또는 부모의 역할을 잘하도록 도와줍니다.

 

지식 앎 / 열매:평화.친절

인간의 지성이 성령의 작용으로 영원한 생명이나 완덕에 관련된 피조물에 대하여 합당하게 판단하는

초자연적인 습성이 지식의 은사입니다.

따라서 이 은사는 피조물과 초자연적인 궁극 목적 사이의 연관성을 성령의 빛으로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초자연적 지식이나 신적 직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령의 특별한 비춤을 받아 초자연적인 목적과 관련되는 피조물에 관해

올바로 판단하고 피조물을 하느님과의 일치의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 은사는 피조물의 공허함을 깨닫고 창조주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하게 해주며 피조물에서 이탈하여

피조물을 거룩하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며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확신을 주고

영혼이 처한 상태를 신속하고 분명하게 알게 하며, 영생에 관한 최선의 처신 방법을 알게 해 줍니다.

부모에게는 올바른 자녀 교육 방법을 알게 하며 또한 선악을 쉽게 식별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영혼에 해가 되는 것을 멀리하게 하고 피조물을 적절하고 거룩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용기 굳셈 / 열매:기쁨.온유

이 은사는 신앙 생활 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고 부동한 신뢰심을 지니고 덕을 실천하도록 성령이 영혼에게 주는 힘입니다.

이 은사가 작용할 때 신자들은 성령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내적 충동에 의해 행동하게 되고

다른 덕행들도 영웅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덕행이건 그것이 완성되려면 용기의 은사가 필요하고

은총의 상태에 항구하기 위해서도 이 은사가 필요합니다.

이 은사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 미지근함을 극복하고 열렬히 하느님을 섬기게 하며,

유혹이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덕의 실천에도 놀라운 활기를 줍니다.

또한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도록 해주며

갖가지 위험이나 적을 만났을 때 담대하고 굳세게 처신하도록 해주고

크고 작은 일들을 충실히 영웅적으로 수행하도록 합니다.

 

효경 공경 / 열매:친절.기쁨.착함

이 은사는 성화 은총과 함께 주입되는 초자연적인 습성으로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과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의 정을 의지 안에 불러일으키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의덕 및 이와 관련된 덕행들을 닦도록 해주고

모든 사물 안에 감추어진 신앙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천상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과 신뢰심을 영혼 안에 불어넣으며

삼위 일체 안에 내재한 신적 부성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를 흠숭하게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 보고 사랑토록 해주어서

선교 사업이나 자선 사업에 힘쓰게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모 마리아를 모든 이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장상들을 합당하게 예우하고 존경하게 합니다.

 

두려워함 경외 / 열매:착함.사랑

하느님에 대한 두려워함의 은사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죄를 피하게 하여

영생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은사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각종 감각적인 무절제를 피하게 하여 정욕을 제어하는

절제의 덕을 실천하게 합니다.

두려워함의 은사에서 뜻하는 두려움은 노예적인 두려움이나 지옥 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자 하는 경외심에서 나온 자녀다운 두려움입니다.

수덕 생활에 힘쓰는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욕구를 능동적으로 정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수동적인 정화의 길도 마련해 줍니다.

이 은사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순수함에 대한 생생한 인식을 주어 모든 방법으로

하느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게 하고,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끊게 하고 쾌락에 대한 관심을 잃게 하며

하느님에 대한 것으로만 기쁨과 만족을 찾게 합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기게 하는 이 은사는

그분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진심으로 무릎을 꿇게 하여 겸손의 높은 단계에 이르게 합니다.

아울러 은총으로 사는 영성 생활의 아름다움을 깊이 깨닫게 하고 절제의 덕을 완성시킴으로써

순결의 덕을 닦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삶에서 맺는 열매로 알아볼 수 있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마태 7,17)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을 잘 간직하면서 살아감으로써 신자들이 맺을 수 있는 삶의 열매를

바오로 사도는 이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착함, 신용, 온유, 절제입니다." (갈라 5,22)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No. 39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23. Pentecost-GIOTTO di Bondone

1304-06. Fresco, 200 x 185 cm.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청소년 주일. 생명의 날)

Pentecost.Pentecoste

(celebrazione mobile) - Solennita

 

 

1985년 4월7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제정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9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지냈으며,

1993년부터는 "청소년 주일"로 용어를 변경하였다.

 

청소년 주일의 의의는,

첫째,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젊은이들에게 전함으로써 교회가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둘째, 교회가 젊은이들과 함께 역사를 위해,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천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날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생명과 품위를 해치는 폭력적인 사건들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교황청 국무원장 소다노 추기경이 제안한 "생명의 날"을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마침내 온 누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으로 층만해졌습니다.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숨어 있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주님의 증거자로 힘차게 복음을 선포합니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CONSTITUTIO DOGMATICA DE ECCLESIA

LUMEN GENTIUM

 

 

제1장 교회의 신비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4.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께 지상에서 이루시도록 맡기신 일이(요한 17,4 참조) 성취된 다음,

오순절에 성령께서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시도록 파견되셨다.

또 이렇게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에페 2,18 참조).

이 성령께서는 바로 생명의 영, 곧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이시다(요한 4,14; 7,38-39 참조).

이 성령을 통하여 성부께서는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마침내는

그들의 죽은 육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다(로마 8,10-11 참조).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고 바로 성전인 신자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고(1고린 3,16; 6,19 참조),

그 안에서 기도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여 주신다(갈라 4,6; 로마 8,15-16.26 참조).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

(에페 4,11-12; 1고린 12,4; 갈라 5,22 참조).

복음의 힘으로 성령께서는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자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다.3)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오소서!” 하고 말씀하신다(묵시 22,17 참조).

이렇게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난다.4)

(1964. 11. 21. 강대인 번역.가톨릭홈에서)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같은 갓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위에 내렸다." (사도 2,2-3)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기념해오고 있는 과월절, 초막절과 함께 3대 축일다.

오순절은 칠주제 (七主祭)라고도 불리우며, 이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곡식을 바치곤 했다.

 

특히 이 오순절은 시나이 산의 계획과 긴밀히 연결되고 있는데 이집트 탈출 50일째 되는 날에 (출애 19, 1-16)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하느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날이기도 한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은 곧 예수께서 주신 약속의 선물,즉 성령, 사랑의 새법과 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이해할 수 있고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받은 새로운 계명의 의미를 보다 깊이 알아들을 수 있다.

 

오순절은 바로 우리 삶의 시작, 우리 삶의 현장이다.

예수를 보지 못해도 확신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현장이다.

오순절은 곧 천상 예루살렘의 지상 실현을 예시적으로 보여준 종말의 의미를 지닌 사건이기도 하다.

 

◎ 알렐루야.

○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며,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 알렐루야.

 

 



 

축일:6월9일

이오나의 성 골룸바 아빠스

Saint Columba

San Columba di Iona Abate

Born :7 December 521 at Donegal, Ireland
Died :9 June 597 at Iona, Scotland, and is buried there
Canonized :Pre-Congregation

 




콜(Colm), 콜럼(Colum) 그리고 콜름실(Colmcille)로도 알려진 골룸바는

아일랜드 도느갈의 가탠에서 왕가의 후예들인 페들리미드와 에트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마도 위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영세받았고, 모빌에서 교육받고, 여기서 부제가 되었다.


그런 후 그는 라인스터에서 수학하였으며, 클로나드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에는 성 모비의 지도아래 글라스네빈으로 갔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하여 543년경에 이 도시가 소개되었을 때, 그는 울스터로 가서,

아일랜드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성당에서 설교하고 수도원을 세우면서 약 15년을 지냈다.

그런 후 563년경에 이 지역을 떠났다. 여기에는 상당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그는 아일랜드에 도착한 성 예로니모의 시편(핀니안 소유) 사본을 처음으로 복사하였는데,

이것이 성 핀니안과 논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핀니안이 이 사본을 요구하자,

국왕 디아르메이드는 골룸바의 사본은 핀니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판정하였다.

 

이렇게 되자 글자 그대로 골룸바는 디아르메이드에게 칼을 뽑게 되었는데,

이것은 골룸바와 함께 성소를 찾아온 콘노트의 쿠난이 디아르메이드의 부하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양가의 사람들은 끝없는 혈전이 벌어졌는데, 큘 드렘느 전투에서는 약 3천 명의 사람이 죽었다.

텔타운에서 개최된 시노드는 골룸바에게 책임을 물어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 결과, 골룸바는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정하였으며,

수많은 외인들을 개종시키므로써 죽을 때까지 보속하기로 단단히 결심하였다.

 

 

이렇게 하여 563년에 그는 12명의 친척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연안에 있는 이오나로 갔으며,

여기서 수도원을 세웠는데, 아일랜드의 교회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픽트족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하였으며, 브루드 국왕을 개종시켰고,

마침내 픽트랜드 전역을 복음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큰 성과가 나온 이면에는 큰 기적이 하나 있었다.

네스강에는 큰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 골룸바가 성호를 긋고 기도하므로써 이를 퇴치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고, 기적에 대한 명성으로 인하여 수도원의 방문자들이 줄을 섰다.

 

골룸바가 서방 교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오나 출신 수도자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의 회칙은 성 베네딕또의 회칙이 정착되기 전까지 전 유럽에서 통용되었다.
그는 성령의 기쁨을 가슴에 안고 살은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골롬바는 겔의 마리아라고도 부르는 성녀 브리지다와  성 바트리시오와 함께 다운패트릭에 묻혔으며, 그분들과 함께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다.

 

*아일랜드의 성녀 브리지다 축일:2월1일.

*성 파트리치오 주교 축일:3월17일.

 

 

 

 

 

 

 

 

성 골룸바노 아빠스(543-615)축일;11월23일.

Saint Columban.San Colombano Abate

보비오수도원장.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주보성인



 

축일:6월9일

시리아의 성 에프렘 부제 학자

ST. EPHREM of Syria

Sant' Efrem Diacono e dottore della Chiesa

Born: c.306 at Nisibis, Mesopotamia (in modern Syria)
Died: 9 June 373 at Edessa (in modern Iraq);

tomb in Armenian monastery, Der Serkis, west of Edessa
Name Meaning : fruitful (hebrew)
Efrem = che porta frutto, fertile, dall'ebraico = that door fruit, fertile, dall'ebraico

 


시인,교사,웅변가 그리고 신앙의 옹호자인 에프렘은

시리아 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교회 학자로 선포된 사람이다.

그는 그 당시에 난무하던 수많은 거짓 학설에 대항하는 특수한 사명을 짊어지고

언제나 진실되고 강력하게 가톨릭 교회를 옹호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니시비스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 시기에 세례를 받았고

자기 고향에서는 교사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 황제가 니시비스를 페르시아에 이양하게 되자

에프렘도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에데사로 피신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성서학교에 크게 공헌함으로써 신용을 얻게 되었다.

그는 부제로 서품되었지만 사제가 되는 것은 사양했으며

미친 체함으로써 주교로 축성되는 것도 피했다는 말이 있다.


그는 글재주가 있었으며 그의 저술은 그의 성덕을 가장 잘 드러 내 준다.

그는 비록 대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은 성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준다.

 

에프렘은 인간 구원의 신비에 관한 그의 저술에서 예수의 인간성과 마리아에 대한

크나큰 신심을 드러냈으며,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다정 다감한 정신을 보여 주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그의 시적인 이야기는 단테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가 그 당시의 이단을 거슬러 노래를 지은 것을 보면 놀랍다.
그는 이단자들의 대중 음악을 선택하고 그들의 가락을 이용하여 정통 교리를 표현한

아름다운 찬미가를 만들었다.

에프렘은 신자들의 교육 방법으로 교회의 공식 예배에 노래를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수많은 찬미가 때문에 '성령의 하프'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에데사가 보이는 조그마한 동굴 속에 살면서 단순하고 엄격한 생활을 즐겼다.

에프렘은 그곳에서 373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아직까지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에서 어떤 문제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이 물려받은 개인적인 신심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래한다는 것은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노래는 기쁨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일치의 정신을 만들어 내고 표현하는 뛰어난 방법이다.

 

에프렘의 찬미가와 고대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서 광채를 빌려오라."는 말을 입증해 준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같은 것을 하기 위해 현대의 에프렘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수들과 협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달콤한 향기에 나를 뉘어 두지 마시오.
이러한 영예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분향도 향료도 사용하지 마시오.
이러한 영예는 나를 이롭게 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장소에서 분향을 올리시오.
나를 위해서는 당신의 기도만으로 나를 인도하시오.
당신의 분향을 하느님께 올리고
나를 건너 찬미가를 보내시오.
향료와 향기 대신에
당신의 기도 속에 나를 기억해 주시오." (성 에프렘의 유서에서)

(성바오로수도회홍메서)

 

성 에프렘 부제의 강론에서

(Sermo 3, De fine et admonitione, 2. 4-5: ed. Lamy, 3, 216-222)

 

하느님의 계획은 영적 세계의 모형입니다.

주여, 당신 지혜의 빛으로써 우리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시어,

이렇게 조명된 가운데 우리가 새로워져 그 순수성 안에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태양이 솟아오름은 우리 인간에게 일과의 시작을 알려 줍니다.

주여, 우리 마음에다 끝모르는 날이 빛을 비추는 공간을 마련해 주소서.

우리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아무것도 우리가 당신께 두는 즐거움을 우리 마음에서 앗아가지 못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가 끊임없이 당신을 탐구함으로써

우리 안에 태양의 운행에 의존하지 않는 그런 날의 표시를 새겨 주소서.

 

우리는 매일 성사에서 당신을 반겨 맞으며 당신을 우리안에 모시오니,

우리가 희망하고 있는 부활을 내적으로 체험하기에 합당한 자로 우리를 삼아 주소서.

우리는 세례의 은총을 통하여 우리 마음 안에 당신 생명의 보화를 지니고 있고

당신 성사의 식탁에서 이 보화가 늘어나고 있사오니,우리가 당신 은총 안에서 즐기게 하여 주소서.

주여, 우리는 당신의 영적인 식탁이 베풀어 주는 주님의 기념제를 우리 안에 지니고 있사오니,

후세생활에서 그것을 실제로 소유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 사멸할 본성 안에서 당신 불멸의 의지가 일으키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통하여

우리가 지닌 아름다움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하소서.

우리 구세주시여,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당신 육신 생명의 끝이었사오니

우리들도 영신적으로 우리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도와 주소서.

예수여, 당신의 부활이 그 위대함으로 우리 영신을 채워,

당신의 성사들이 우리에게 그 부활을 반영해 주고 알게 해주는 거울이 되게 하소서.

 

우리 구세주시여, 당신이 지니신 계획은 영적 세계의 모형이오니

우리가 영적인 사람으로 그 계획 안에서 걸어가게 하소서.

주여, 우리 마음에서 당신의 영신적 현존을 앗아가지 마시고,

우리 감각에서 당신 현존이 주는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거두지 마소서.

우리 육신 안에 숨겨 있는 사멸성은 우리 안에 부패를 생기게 하는 근원이오니,

당신의 영적 사랑을 부어 주시고 그 사멸성의 효력을 우리 마음에서 지워 주소서.

주여, 우리 본향에 속히 다다르게 해주시고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세처럼

계시를 통하여 그 본향을 소유하게 해주소서.

(가톨릭굿뉴스홈에서)

 

   메소포타미아의 니시비스(Nisibis) 태생인 성 에프라임(또는 에프렘)은 어느 이방인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양친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됨에 따라 18세 때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니시비스의 성 야고보(Jacobus, 7월 15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후일 이 학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325년의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성 야고보를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시리아의 문헌에 의하면 350년의 페르시아 침입 때 그의 기도 덕분으로 니시비스가 해방되는데 큰 공로를 세웠으나, 363년에 요비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니시비스가 재차 페르시아의 수중에 들어가자, 그는 로마 땅인 에데사 근교의 동굴에 거처를 정하고는 신자들에게 설교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제였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곳에서 그의 저서 대부분을 저술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370년에 카이사레아(Caesarea)로 가서 성 바실리우스(Basilius)를 찾았으며, 돌아오는 길에 372년과 373년 겨울의 냉혹한 기근을 덜어주는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고 한다. 그는 에데사에서 운명하였다.

   성 에프라임은 성서적 근원을 밝히는 비중 큰 저서를 비롯하여 성서 주석, 교의 및 수덕 생활에 관한 수많은 글을 시리아어로 남겼다. 또한 그는 이단을 반박하는, 특히 아리우스(Arius) 이단과 영지주의를 공격하는 중요한 논리를 서술하였고,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외에도 그는 복되신 동정녀에 대하여도 신심이 깊었는데, 그가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단언하였기 때문에 흔히 ‘원죄 없으신 잉태’의 증인으로도 불린다. 또한 그는 공식 예절에 찬미가를 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앙 교육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전례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업적은 일찍이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그리고 라틴어로 번역되어 자주 사용되었는데, 그의 니시비아어 찬미가와 절기에 따른 찬가는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하여 그는 ‘성령의 하프’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1920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황이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한 것은 시리아 교회 출신으로 서방 교회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그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에프렘 부제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65-167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에프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043-6045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시리아의 성에프렘 부제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38-139쪽. 
(가톨릭홈에서)

시리아는 예부터 가톨릭이 번성한 지방으로서 성인 성녀도 다수 세상에 내보내고 있으나, 6세기에는 그리스도 일성론(一性論)의 이단이 발생하게 되어 백성의 신앙이 크게 동요되었다. 이런 위기를 당하여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노력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을 오류에서 건지고 그리스도교의 피해를 최소한도로 막아낸 이가 성 에프렘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교회의 기둥이라 부르게 된 것도 당연하리라.

 

그의 생년월일은 명백하지 않으나 4세기초로 생각되며, 출생지는 시리아 동부에 있는 니시비스 시였다. 그의 참회록을 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훌륭한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간한 장난꾸러기였던 모양이다. 가난한 백성의 소중한 소를 몽둥이로 때려 산중으로 쫓아버린 후 맹수에게 잡혀 먹었는지 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는 여행을 떠나 어느 죄인과 함께 체포되어 죄도 없으면서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고 고문을 받기도 하는 등 갖은 환난을 당했다. 이에는 아무리 거칠었던 그도 대단히 공포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이 환난은 전에 지은 악행에 대한 보속이다. 그러나 곧 무죄로 석방되리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다음날의 재판에서 같이 체포된 다른 남자가 제 자신의 범죄를 자백해 에프렘은 사건과 하등 관계없음을 증명했으므로 그는 즉시 석방되었다. 이제까지 하느님의 섭리에 여러 가지 의심을 품었던 에프렘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깊이 느껴지는 바가 있어 세속을 떠나 광야로 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고 기도와 성서 연구 등에 몰두하며 세월을 보냈다.

 

이것은 마침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제1차 공의회가 소집되었을 때의 일이다. 경건한 에프렘은 니시비스의 주교 성 야고보의 눈에 띄어 회의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신앙의 대가라고 할 만한 세계 각지의 주교들의 풍채를 접하고 얻은 점이 적지 않았다. 그 뒤 그는 또한 니시비스도 돌아와서 야고보 주교로부터 그곳 교회의 보속된 어느 학교의 교직을 받게 되었는데, 곧 페르시아 왕 사볼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마을을 점령했으므로 그도 에데싸라는 곳으로 피난했다.

 

당시 에데싸에는 이단편과 가톨릭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었는데, 에프렘은 이단편에서 아주 쉬운 노래를 작성해 이를 사람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이단의 확장에 노력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시재(詩才)를 발휘해 이에 대항하고자 구세주에 대한, 성모께 대한, 또한 축일에 대한 아름다운 시를 지어서 소녀 성가합창단에게 성전이나 다른 곳에서도 이를 노래 부르게 하여 호교를 위해 공헌했다. 이 일은 삽시간에 부근에 소문이 나서 길을 걸으면서도 그 노래를 부를 정도였으니 얼마나 진리의 보습에 공헌했는지 가히 알 것이다. 또한 그는 언변도 좋아서 그의 강론 시에는 많은 청중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으므로 종종 강론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입으로 선을 권해도 행동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도저히 남을 교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에프렘은 결코 자선 행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373년 에데까 시내에 무서운 페스트가 발생해 맹위를 떨쳤는데, 이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 백성들은 병으로 신음하고 혹은 허기로 우는 자가 사방에 꽉 차 있었으므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간호하고, 수치를 참아가며 부호의 가정을 방문하여 난민구제를 위해 힘썻던 것이다. 그리고 전염병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는 부근의 산속에 들어가 성서를 주해, 기록하며 경건히 그 날 그 날을 보내며 고요히 선종 준비를 했다.

 

그의 선종의 해는 출생한 연월일과 마찬가지로 확실치 않다. 다만 모든 점에서 추측컨대 379년이었으리아 생각되며, 다만 그의 선종일은 6월 9일이라 명백히 알려져 있다.

그의 장례식에는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도 추도의 강론을 행하고 고인의 유덕을 칭찬해 “그는 성인과 같았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그의 전구를 구했다.

 

교회는 그에게 교부(敎父)라는 존칭으로 부르도록 했다.

또한 그가 남긴 수많은 시가(詩歌)는 지금도 사제의 성무 일도서에 포함되어

가톨릭 전례의 일부로 사용되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신심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음악이 없는 전례란 상상하기 어렵다.

음악은 웅장한 대성당의 성탄 전야 미사에서 소성당의 조촐한 새벽 미사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관계없이 전례를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아름다운 성가는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고 영혼을 정화시킨다.

 

4세기경 시리아에서 살았던 성 에프렘은 당시 이단자들이 수금에 맞춰 부르던 노래 가사를

가톨릭 교리에 맞게 고쳤으며 공식적인 전례에 사용할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성령의 하프’라고 불렀다.

여러 세기 동안 많은 음악들이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작곡되었다.

성가는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고 기도 생활을 향상시킨다.

만약 당신이 헨델의 메시아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처럼

종교적인 바탕 위에서 작곡된 곡들을 좋아한다면 그 곡들로 영혼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가 말한 것처럼 “천국은 음악이다.”

 

어떤 종류의 음악을 즐겨 듣는가?

통속적인 음악보다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음악을 자주 듣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축일 : 6월9일

복녀 안나 마리아 타이지

Bl. Anne Mary

Bl. Anne Marie Taigi

Blessed Anna Maria Taigi, Matron (AC)

Beata Anna Maria Taigi Madre

Born: 29 May 1769 at Siena, Italy as Anne Marie Gianetti
Died: 9 June 1837 at Rome, Italy of natural causes; body incorrupt;

remains transferred several times; interred at Saint Crisogono church, Trastevere, Italy
Beatified: 30 May 1920 by Pope Benedict XV
Canonized: pending

Anna = grazia, la benefica, dall'ebraico = gracious one (Anne)

 




안나 마리아 안토니아 제수알다는 1769년 5월 29일 시에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약종상이었는데, 사업이 망하여 가난에 찌들게 되자, 그들은 로마로 이주하여,

안나 부모는 가정부로 들어갔고, 안나 자신은 가난한 어린이를 교육하는 단체에 보내졌다.

 

13세의 어린 나이로 그녀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면사 공장에서도 일했고, 귀족 집의 하녀로도 일해야 하였다.

그러다가 처녀로 성장하면서 옷을 탐하고 아름다움을 쫒으려다가,

마침내 1790녀에 도미닉 따이지란 청년과 결혼하게 되었으나,

그 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사제에게 총고백을 하고부터는 마음을 일신하였다.

그녀는 수년 동안 천주의 종 수도회의 안젤로 신부에게 고해를 보고 또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늘 갓 회개한 사람처럼 자신의 죄를 깊히 뉘우치고, 헛된 것을 끊어버리고는 세속적인 모든 쾌락을 추호도 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나는 바느질 품삯으로 남편의 적은 수입을 도왔고, 가정에 충실하였다.

한편, 영신적으로는 굉장한 수준에까지 올랐다.

하느님은 그녀에게 놀라운 기적까지 허락하셨고, 탈혼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예언하는 힘을 주셨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탄의 간교와 영적인 무미건조함으로 큰 고통을 받기도 하였다.

그녀는 1837년 6월 9일. 68세의 일기로 운명하였고, 교황 베네딕도15세에 의해 1920년에 시복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안나 마리아는 도미니코 타이지라는 짐꾼과 결혼을 했고 일곱 자녀를 낳았다.

성녀는 특별히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추기경, 왕후들, 갑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등 온갖 불의의 사람들이 끝임없이 성녀의 집에 모여들었다.

성녀는 어느날 가시관으로 된 태양에 현시를 보았고 그때부터 심한 육체적인 고통속에 숨졌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